[스크랩] 가라앉는 지구
[MBC 스페셜 : 가라앉는 지구]
![]() |
|
![]() |
|
이 두 권의 책은 꼭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뜨거워지는 지구 → 인류가 자초한 비극
악성 기상 재해 → 성난 지구의 경고
얼음이 녹는 극지방 → 위기에 처한 생명들
21C 인류 최대의 과제 → 가라앉는 지구
바다에서 나 바다에서 자라나는 아이들, 사람들은 흔히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를 지상낙원이라 부른다. 가난하지만 소박한 행복이 깃든 곳.
여의도 세배 크기의 만여 명의 인구를 가진 투발루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작은 나라. 비행기가 투발루 상공에 진입하면 수도 푸나푸티 섬의 소방차는 활주로의 긴 사이렌을 울린다. 일주일에 단 두 차례 만 뜨고 내리는 비행기는 외부 세계와 섬을 연결해 주는 유일한 통로. 하지만 지금 투발루는 아무도 청하지 않는 자연의 위협 앞에 누구도 경험치 못한 변화를 겪고 있다. 마치 수중도시를 연상케 하는 마을, 마당까지 차오른 물로 집 앞은 거대한 연못이 됐다. 아이들에게도 물난리는 일상이 됐지만 나라 전체가 가라앉는다는 위기감이 현실화 되면서 열대지대 특유의 낙천성도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때때로 바다는 사납게 변하며 이 작은 섬을 덮친다. 바다의 범람은 섬사람들의 생존을 위협할 만큼 심각한데다 최근 몇 년 사이 부쩍 잦아지고 있다. 불어나는 바닷물, 국토의 상당부분이 잠겨가는 투발루. 국가존립에도 시한부 선고가 내려진 상태다.
사우파투 소포아가/전 투발루 수상.
“만약 온실가스 배출과 지구온난화, 해수면 상승을 막을 대책이 세워지지 않는다면, 앞으로 80~100년 후에, 투발루는 불행히도 바다 밑으로 가라앉을 것입니다.”
죽음이 차오르는 땅, 투발루를 위협하는 해수면의 상승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지구온난화는 한 번도 녹은 적 없는 극지방의 얼음을 무너뜨렸다. 평온을 이루던 바다 얼음도 녹아 낯선 풍경을 만든다. 지구의 어느 곳 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극지방의 온난화. 빙하가 녹고 대양이 따뜻해질수록 지구의 해수면은 자꾸만 올라간다. 지구온난화는 생태계에도 큰 영향을 준다.
북극을 터전으로 오래 기간 살아온 생명체들의 존립에도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서 많은 것이 변한 지구. 극지방에서 시작된 해수면의 상승은 멀리 남태평양 저지대 국가에도 영향을 미친다. 투발루의 해수면 상승률은 연간 5.5m로 지구평균 상승률의 3배. 더구나 1월에서 3월은 조수간만의 차가 가장 큰데 킹 타이드라 불리는 큰 밀물 때는 바닷물의 수위로 극도로 높아져 썰물 때와는 확연한 차이가 난다. 해수면의 상승은 국토 대부분의 고도가 1m 남짓인 투발루에게 치명적 위기를 안겨주고 있다.
힐리아 바바에/투발루 기상청장
“지난 15년 동안 해수면이 7.5센티미터(상승했습니다), 측정 수치만 보면 미미한 상승이지만 그 영향이 작다고 결코 말할 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만조 때 해수면의 높이는 2.6m, 큰 밀물 때는 그보다 높은 3.26m가 되는데 전 세계 과학자들은 금세기 안에 3.85m까지 해수면이 치솟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투발루의 최고 지대는 4.58m로 바닷물이 4m까지 올라온다면 국토 상당부분은 잠기게 된다. 투발루는 해수면 상승으로 백년 안에 바다 속에 가라앉을 첫 번째 희생양으로 지목되고 있다. 실제 만조 때마다 투발루인들은 해수면 상승에 따른 급속한 변화를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보다시피 지금은 비가 내리지 않았는데, 하지만 가끔 해수면이 높게 상승하면 바닷물이 (땅속을 통해) 이곳으로 올라와 가득 메워서 길이 없어집니다.”
이러한 변화는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앞으로 나머지 세계가 어떻게 될지를 보여주는 불편한 진실이다. 멈추지 않고 솟아오르는 바닷물. 조금씩 불어난 물에 침공당한 마을은 또 다른 고립을 낳고 있다. 해안가에 위치한 집들은 더욱 큰 위험에 노출돼 있다. 바카밀로씨네는 해마다 2월이면 물난리를 겪는데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지난 2006년.
알라이네 바카밀로/투발루 주민
“그날 모두 두려워했죠. 바닷물이 들어왔던 게 한밤중이었거든요. 거의 새벽 2시쯤이었죠.”
만조와 강한 바람이 겹치면서 자고 있던 집안까지 순식간에 물이 들어왔던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그날은 아찔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제 남편은 만조가 가까워지면 집앞에 제방을 쌓는다. 다가올 밀물이 두렵기 때문이다.
카이사미 바카밀로/투발루 주민
“밀물 때는 아주 위험할 정도로 높아서 제방도 우리 집을 지키기에는 충분히 안전치 않아요.”
높은 파도에 악천후라도 겹치는 날엔 해안가 집들은 물난리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좁은 섬나라 그 어디에도 안전지대란 없다. 기후 재앙이 눈앞에 현실이 된 투발루 아이들. 하지만 아이들이 느끼는 걱정은 매달 찾아오는 물난리가 아니다. 바로 기약 없는 미래다.
프랭크/나우티 초등학교
“투발루는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있고, 더 이상 투발루는 존재하지 않을 거예요.”
리씨/나우티 초등학교
“모든 과학자들은 투발루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을 거라고 하는데 우리 할머니나 대부분의 투발루 사람들은 신께서 보호해 주실 거라고 믿어요. 하지만 난 그 말을 확신할 수 없어요. 난 두려웠고, 다른 나라로 떠나고 싶어요.”
국토가 수몰될 위기가 처한 것은 비단 투발루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엔 정부간 기후변화 위원회 즉 IPCC에서는 2007년 주목할 만한 보고서를 펴냈다. 이를 통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 그중 한부분에는 남태평양 기후변화에 관한 심각성을 경고하고 있다.1)
반기문/유엔사무총장
“기후변화로부터 나오는 영향은 전 세계 어떤 나라 구분 없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런 개도국들이 제일 피해를 많이 보게 돼 있습니다. 특히 작은 섬나라의 경우 해수면이 올라가는 경우에는 나라 자체가 수면 하에 들어가는 상황이 생기게 되겠죠.”
인도양의 위치한 몰디브도 투발루와 비슷한 운명에 놓여 있다. 바다에 의탁해 살아가는 사람들. 바다가 주는 것에 감사하며 소중히 이어온 삶과 역사였다. 휴양지로 더 유명한 몰디브는 그러나 한 순간 돌변한 바다에 의해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지난 2004년에 발생한 쓰나미는 몰디브 사람들에게는 공포가 된 일화다. 이후에도 쓰나미와 같은 바다의 습격은 호시탐탐 낙원을 위협했다. 그중 칸둘후드 섬은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결국 몰디브 정부는 섬 전체를 포기해 버렸다.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텅 빈 섬. 부서지고 버려진 폐허처럼 이곳에 살던 사람들의 삶과 추억들도 모두 산산 조각이 나고 지붕을 맞대고 살던 이웃들도 각자 살 곳을 찾아 흩어졌다. 남은 것이라곤 주인을 잃은 물건 뿐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어쩌면 시작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쓰나미와 같은 일시적 충격이 아니더라도 태평양의 저지대 국가들은 바닷물의 침투로부터 삶의 터전을 잃어가고 있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20가구가 살던 테부아 섬은 계속되는 바다의 범람으로 나무가 죽고 모래마저 쓸려나가 누구도 살 수 없는 황무지가 됐다.
마이크 푼/키리바시 환경부
“예전에는 이 바위(섬) 위에 모래와 흙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무들도 있었습니다. 그 말은, 사람들이 살아갈 식수가 있었다는 뜻이고, 실제로 과거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살았습니다.”
용도 폐기됐다. 테부아 섬은 키리바시의 불안한 미래를 보여주는 사례다. 바다에 수온이 높아지면 사이클론과 같은 폭풍은 세력이 급속이 커지고 힘도 오랫동안 지속된다. 거센 폭풍, 예측 불가능한 결과를 몰고 오기도 한다. 작년 12월 키리바시에는 갑자기 큰 파도가 밀어 닥쳤다. 충분한 대비를 하지 못한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거대한 파도는 평소와 다른 전혀 엉뚱한 방향에서 밀려왔다.
이빠우 야고바/말라케이 섬 행정책임자
“그날은 바다도 잠잠했고 날씨도 화창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인지 거대한 파도가 덮쳤고 우리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릅니다.”
데뺀떼끼/말라케이 섬 주민
“전에 우리 집이 있었어요. 우리 집 중 큰 건물이 저기 있었는데 파도에 쓸려갔어요. 큰 집이 저기에 있었다고요? 네.”
가족과 함께 살던 보금자리는 이미 살아진지 오래, 부서진 잔해만이 그날의 참혹함을 말해준다. 공동으로 쓰던 마을의 사랑방도 거센 바다의 침공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버렸다. 그녀는 집의 부서진 잔해를 간신히 긁어모아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자그마한 집을 마련했다. 하지만 그날의 악몽은 뇌리에서 좀처럼 지워지지 않고 있다.
“더 이상 여기오고 싶지 않아요.”
급격한 자연의 변화를 따라 잡지 못하는 전통적 방식의 느린 삶의 속도. 섬사람들은 집행이 유해 된 재앙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웬타보 매켄지/남태평양대학 교수
“어떤 점에서 우리 주민들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구경꾼일 뿐입니다. 그저 보기만 할 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다가 집어 삼킨 땅. 언제 범람할지 모르는 바다. 하지만 비좁은 섬나라에서 바닷물을 피해 달리 갈 곳도 마땅치 않다. 설상가상으로 건축 재료이자 먹을거리가 됐던 코코넛나무마저 염분 때문에 말라죽는 일이 많아졌다. 나무가 살 수 없게 된 자연환경은 인간에게도 가혹한 생존조건이 되고 있다.
“코코넛나무는 우리 문화에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주민들은 많이 걱정하고 있습니다. 코코넛나무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공급해주는 생명의 나무입니다.”
궁여지책으로 해안가에 심기 시작한 맹그로브나무. 훗날 크게 자라면 단단하게 박힌 뿌리가 토양이 쓸려 나가는 것을 어느 정도는 막아 주리라 기대하고 있다. 툭하면 물이 잠기는 나라. 하지만 정작 필요한 물은 부족한 나라. 땅과 지하수가 바닷물에 오염되면서 마실 물은 빗물에 의존하고 있다. 불투명한 키리바시의 미래. 어쩌면 우리 인류는 이번 세기 안에 남태평양의 작은 낙원이 지도상에 영원히 사라지는 장면을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가라앉는 국가를 책임지고 있는 지도자, 그의 고민은 남다를 것이다.
아노트 통/카리바시 대통령
“가끔은 부질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죠. 정말 가슴 아픕니다.”
해수면 상승이라는 거대한 환경의 도전 앞에 이 작은 섬나라가 맞설 힘은 없어 보인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되도록 방파제를 높이 쌓는 것이지만 국토 전체를 에워싸는 것도 가난한 나라에서는 쉽지 않는 일이다. 국제사회의 도움이 절실한 시점. 하지만 현재 세계 각국은 저마다의 이익을 살피느라 침몰하는 섬나라의 호소를 외면하고 있다.
“저는 항상 기부변화는 경제 성장이 아니라 생존이 달린 문제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중요한 것은 기후 변화 희생자로 우리나라가 선두에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또 다른 나라가 다음 희생자가 될 것입니다.”
지난 세기 화석연료는 인류에게 유례없는 풍요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지구에는 전에 없던 재앙을 몰고 왔다. 20C말부터 산업화에 의한 지구온난화는 꾸준히 경고 돼 왔다. 이를 입증하듯 실제 지구촌 곳곳은 인류가 자초한 재앙 속에서 각종 기상이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기상이변은 왜 생겨나는 것일까?
허창회/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지구에서 지금 발생하고 있는 것은 열평형이 깨지면서 지구 자체는 열평형을 맞추려고 하는 것지요.”
정일웅/강릉원주대 대기환경과학과 교수
“재해성 기상의 빈도와 강도가 날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서 그로 인한 피해규모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스스로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인 지구는 포구와 해일, 폭염 등의 이상 기후를 통해 깨진 열평형을 맞춰 나가고 그러는 동안 지구는 점점 더 인간이 살기 힘든 열악한 환경으로 변해갈 것이다. 지난 세기 지구의 온도는 0.74℃ 상승했고 지금의 재앙들은 모두 그 결과물이다. 하지만 앞으로 100년 뒤에는 지구 평균온도가 최고 6℃까지 올라 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마크라이너스/과학저술가, 환경운동가
“그 영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수십 억 년간 지질 역사에서 그렇게 놓은 기온 상승이 있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인간이 지구상에서 그렇게 높은 온도를 경험한 적이 없었습니다. 지구 온도 상승은 인류 전체 역사에서 최고의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구 온도 상승은 인간이 겪었던 어떤 전쟁, 기근, 위기보다도 더 큰 문제입니다.”
기후변화 전문가이자, 환경운동가로 <6℃의 악몽>이란 베스트셀러를 펴낸 마크라이너스는 지구온도가 6℃ 상승하는 최악의 경우 인류에게 대참사가 벌어질 것이라고 주저없이 말한다.
“대부분 인류는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보다 지구온도가 6도 상승했을 경우 90억 세계인구가 생존할 방법이 없습니다. 세계 인구가 현재보다 1/9, 1/10로 줄어들 것이라고 대부분 예측하고 있습니다.”
지구온난화는 주로 선진 공업 국가들에게 그 책임이 있는데 아이러닉하게도 아직까지 산업화의 과실을 맛보지 못한 투발루가 맨 먼저 직격탄을 맞게 됐다. 이 아이는 그러한 부조리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일요일에 투발루는 교회와 함께 한다. 국민의 99%가 기독교 신자로 사람들은 노아의 방주 이후 다시는 물의 심판이 없을 것이라는 신의 언약을 철석같이 믿고 있다.
케빈/투발루 주민
“(섬이 가라앉을 거라는) 그 말은 안 믿어요. 만약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 분께서 도와주실 거예요.”
아페드/투발루 주민
“투발루가 사라질 거라는데 동의하지 않아요. 조심해야겠지만, 더 이상의 대홍수는 없을 거라 말씀하셨기 때문에 가라앉을 거라고 믿지 않아요.”
신의 가호 속에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사람들. 하지만 그들의 기도는 점점 더 공허해지고 시한부의 평화 속에 섬의 종말은 가까워지고 있다. 현재 투발루 사람들 중에는 아이들을 위해 미래가 없는 조국을 떠나려는 움직임도 서서히 일고 있다. 5명의 자녀를 둔 니우 로안씨도 요즘 이민을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니우 로안/투발루 주민
“나만 생각한다면 투발루를 떠나고 싶지 않아요. 투발루는 내 인생 최고의 섬이니까요. 자식들은 외국으로 보낼 계획을 하고 있어요. 그들의 인생을 위해서 외국으로 나가 좋은 직업을 찾길 원해요.”
부부는 섬에 남고 아이들만 외국으로 보내는 사람들도 있는데 파티파티씨는 친언니에게 아이들을 모두 입양시켜서 뉴질랜드로 떠나보냈다.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 그것은 불안한 투발루를 떠나 보다 나은 교육을 받으며 새로운 삶을 살게 하는 것이라고 그녀는 믿고 있다.
파티파티/투발루 주민
“아이들을 (뉴질랜드로) 보낸 주된 이유는 더 좋은 교육을 받기 위해서예요. 만약 더 좋은 교육을 받으면 아이들이 앞으로 더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어요.”
아이들의 아버지 파세카씨는 벌써 6년째 사진으로만 아이들과 만나고 있다.
파세카/파티파티의 남편
“매일 저녁 잠들기 전에 뉴질랜드에 있는 우리 아이들을 보호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멀리 외국에 있는 우리 아이들을 보호해주길 바래요.”
아이들이 보고 싶을 때면 파티파티씨는 정원을 가꾸는 일에 더욱 매달린다. 올 가을 아이들이 방학 때를 이용해 잠시 투발루를 다니러 올 예정인데 탐스러운 파파야는 아이들에게 줄 엄마의 선물이다.
“우리 애들 타우상아, 모네, 파세카, (조카) 라피엘!! 엄마(이모) 파티파티야!!! 잘 지냈니? 9월에 한 달간 방학하면 투발루에서 만나자꾸나. 보고 싶단다.”
현재 뉴질랜드에는 투발루 인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투발루 전체 인구의 1/4에 가까운 2500여명이 이주해왔고 그중 대다수는 오클랜드에 모여 산다. 투발루 유일의 통신회사 임원이었던 바이릴로씨는 지난 2005년 가족들과 함께 조국을 떠났다. 하루일과의 대부분은 아이들을 돌보는 것. 뉴질랜드의 삶이 낯설기는 해도 아이들에게는 보다 안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바이릴로/투발루 이주민
“환경과학자들은 투발루가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심각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모든 가족들을 데리고 뉴질랜드로 온 이유입니다.”
투발루에 대해 기억나는 거 있니? 아니요.
가토아/아들 17살
“바다가 아니고, 연못이나 호수처럼 생긴 곳에서 수영을 했어요. 가끔 파도가 높아지면 우리가 놀던 곳이 바닷물로 채워졌어요.”
바이릴로씨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뉴질랜드 행을 택했다면 남태평양 라디오 방송국에서 투발루의 소리를 진행하는 팔라 하울랑기씨는 20년 전 뉴질랜드에 온 이민 1세대. 지금은 라디오에서 고향을 떠나온 투발루 사람들의 사연과 기후변화에 관한 다양한 소식을 전하고 있지만 그녀가 투발루를 떠날 때까지만 해도 지구온난화라는 말은 없었다고 한다.
팔라 하울랑기/<투발루의 소리> 진행자
“사람들이 투발루를 떠나고 있는데 이건 공평하지 않아요. 기후변화 때문에 떠나야만 하는 그들의 선택은 생존과 미래를 위한 것이니까요. 그래서 그들은 너무나도 사랑하는 자신들의 조국을, 섬을 떠나야만 합니다.”
지구는 따뜻해지고 바닷물은 차오르고 투발루를 비롯한 인근 저지대 섬사람들은 계속해서 뉴질랜드로 향하고 있다. 그들 대부분은 저임금 노동자로 전락해 섬에서의 삶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카이망/키리바시에서 뉴질랜드로 이민
“키리바시의 생활은 너무 너무 좋고 편해요. 아침에 일어나 낚시를 해서 물고기를 잡아먹으면 되니까 그냥 살아갈 수 있어요. 하지만 뉴질랜드에선 돈이 필요하죠. 그냥 낚시를 해서 살아갈 수는 없으니까요.”
한층 고단해진 생활, 하루 8시간에 쉼 없는 노동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섬사람들. 함께 있으면 위안이 된다. 비록 고향을 떠난 타국에 살지만 자신의 언어와 문화도 소중히 지켜가고 있다.
사우라구/투발루 누구페타우 이주민모임 대표
“고향 섬을 떠나 외국으로 떠나온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문화는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문화를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들이 자라면서 우리의 문화를 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 저희에게 이건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섬을 떠나서 살더라도 우리의 문화와 삶의 방식을 기억하거라.
부모님이 하신 말씀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거라.
어디서든 섬을 기억하려는 노력. 하지만 섬이 가라앉고 만다면 노력은 허사가 될 것이다. 그때의 아이들은 조국의 말과 춤을 기억할 수 있을까?
팔라 하울랑기
“사람들이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고 나는 투발루에서 왔다고 대답할 때 ‘두발루가 어디야? 아, 한 10년 전쯤 가라앉아서 더 이상 없는 곳이네.’ 라고 말하는 걸 상상해 보세요. 그건 우리에게 부당한 일이죠. 투발루가 지구상에서 사라지면 우리가 자랑스럽게 여기고 다른 사람과 구분 짓는 정체성과 전통문화가 사라질 거예요.”
투발루의 미래는 절망적이다. 인류가 온난화의 속도를 최대한 늦춘 다해도 이번 세기 안에 잠길 가능성이 크다. 결국 최후를 준비해야 할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혼 타바우 테이/부총리 겸 환경부장관
“우리는 기후 변화의 피해자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기후변화의 난민이 될 것입니다. 그것을 부정할 순 없습니다.”
최후 기후난민은 국제사회의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복잡한 이해관계와 정치적 이유로 국제법상 기후난민은 아직 인정되지 않고 있는 개념이다.
클라우스 보셀만/오클랜드대 환경법센터소장
“기후변화와 경작지가 줄어드는 사막화의 영향과 같은 복잡한 문제들을 앞으로 더 자주 직면하게 될 겁니다. 기후 난민에 대한 공식적 대책이 절실하고, 기후난민도 정치적 난민처럼 받아들이는 것을 기본적인 의무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기후변화가 가져올 수 있는 재앙은 주로 대체 능력이 취약한 가난한 나라의 치명상을 안기며 기후난민을 발생시킨다. 지난 2007년 방글라데시에는 시속 250Km에 어마어마한 사이클론이 강타, 무려 만여 명이 사망하고 삼백만 명이 집과 땅을 잃었다. 가족을 잃고 홀로 남은 이들은 슬픔을 달래기도 전에 또 다시 힘겨운 현실 앞에서 절망하고 있다. 사이클론 외에도 방글라데시에는 해수면 상승으로 이미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다. 계속되는 해안침수로 국토의 상당부분이 유실되고 있는 것. 지독한 가난에 삶에 터전이 사라지는 비극까지 기후변화는 이중의 고난을 안겨주고 있다.
“저 멀리 집이 있었습니다. 땅이 사라져 18번 이사를 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피해자는 있지만 정작 책임질 가해자는 없는 현실. 그것이 국제사회가 기후난민을 인정하고 도와야하는 이유다.
제이슨 가먼/빈민구호단체<옥스팜> 대표
“기후변화는 대처 능력이 있는 선진국보다 가난한 나라에 훨씬 더 큰 피해를 줍니다.”
땅과 집을 잃은 이들은 극빈층을 형성하며 살만한 곳을 찾아 난민 아닌 난민 신세가 된다.
모하메드 이브레임
“고향 볼라 섬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땅이 물에 잠겨서 돈을 벌기 위해 왔어요.”
이러한 이주는 국내 문제를 넘어 국제분쟁으로까지 비화될 가능성도 있다. 지구온난화로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아프리카의 케냐. 과거 강이었던 곳조차 깊게 땅을 파야만 물을 구할 수 있다. 부족한 물이 생존을 위협하면서 지독한 목마름은 크고 작은 분쟁을 낳고 있다. 케나와 우간다와의 접경지역에서는 벌써 수년 째 피의 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민병대가 그토록 지키려 애쓰는 것은 마을의 우물.
제레미아/투르카나지역 수자원국장
“문제는 물 때문에 발생해요. 이곳 사람들이 가축을 위해 물과 풀을 찾아 이동하면 우간다 사람들이 이런 일을 저질러요. 그들이 이런 혼란을 만들죠. 그게 문제예요.”
만약 지구온난화에 따른 물 부족 사태가 없었다면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는 비극은 애초부터 없었을 것이다. 물이 있는 곳에 언제나 총을 가진 민병대가 존재하는데 그중에는 애같은 소년도 있다.
라타베리/케냐 민병대
“우간다 사람들이 총을 갖고 사람들을 죽이기 때문에 우리도 총을 가지고 있습니다.”
변화된 지구환경으로 촉발된 갈등과 분쟁은 비단 아프리카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유엔은 2030년이면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물 부족에 시달릴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그보다 앞서 이미 국제분쟁연구소는 세계 46개국 27억 명의 사람들이 기후변화에 따른 분쟁위험에 처해 있음을 발표한 바 있다.
댄 스미스/국제분쟁연구소 소장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식량문제가 불거지고 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사람들은 자주 이주를 하게 됩니다. 예기치 않은 통제 불능의 분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기후난민의 문제는 먼 나라의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되돌릴 수 없다면 이들의 피해를 줄이는 일이야말로 인류의 미래를 보장하는 길이 될 것이다. 그 시작은 지금이어야만 한다.
마크 라이너스/<6도의 악몽>저자, 환경운동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구온난화를 감소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지구온난화를 막기엔 너무 늦었습니다. 온난화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재앙을 막기엔 늦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점점 빠르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잠재적으로 지구온난화가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되기까지 불과 몇 년 남지 않았습니다.”
지구상에서 투발루가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은 과연 얼마나 남아 있는 걸까. 불안한 미래 속에 오늘도 투발루에 아이들은 지구온난화를 배우며 시한부 선고가 내려진 조국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상상해보는 10년 뒤의 투발루. 만약 나라가 사라진다면 그들의 생활방식도 문화도 미래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100년 후 아닌 50년 후에 우리는 이곳에서 투발루 아이들의 미소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것들을 쓰지 말아주세요. 작은 나라들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게 되니까요.”
“석유와 공장, 자동차 사용을 줄여주시겠어요? 그것이 여러분이 우리를 도와주는 거예요.”
- 투발루 초등학생들의 말
투발루는 지난 2001년 국토 포기를 선언했다. 이제 평화로운 섬과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의 미래는 온난화를 막기 위한 63억 지구인 모두의 손길에 달려 있다.
당신은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 저작권은 MBC 스페셜에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상업적인 용도는 금합니다.
1) “남태평양 지역 섬나라 국가들의 대부분의 기반 시설은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침수, 홍수, 해안 침식과 관련한 물리적 손상으로부터 심각한 피해를 겪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