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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하버드 특강 "정의" - 8부 공정한 출발

다니엘22 2011. 9. 5. 04:13

8강. 공정한 출발

(What's a Fair Start?/What Do We Deserve?)

 

<개요>

 

부자에게 세금을 부과해 사회적 약자를 돕는 것은 정당한가? 연소득이 3100만 달러인 마이클 조던이나 수백억 달러의 재산을 보유한 빌 게이츠의 입장에서 보면 부당한 일일 수도 있다. 반면 최하위계층의 입장에서 보면 단지 재능을 타고났다는 이유만으로, 더 좋은 가정환경에서 온갖 혜택을 누려왔다는 이유로, 이 사람들이 모든 것을 자신의 몫이라 주장하는 것은 부당하다. 물론 타고난 재능과 후천적 노력 때문에 소득과 분배의 불균형이 발생하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우리는 이것이 전적으로 자기의 공이라 주장할 수 있는가? 정의로운 분배원칙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존 롤스의 대답은 평등의 원칙과 차등의 원칙이다. 무지의 장막에 가려진 사람들이 원초적 입장에서 선택할 정의의 두 원칙, 특히 차등의 원칙은 분배정의를 논하는 핵심이다. 차등의 원칙이란 선천적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그 재능을 발휘해 얻은 이익의 일부를 사회적 약자를 돕는 일에 쓴다는 조건 하에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을 용인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은데 자기소유나 노력, 동기부여를 강조하는 반박과 그에 대한 롤스의 대답이 설득력이 있는지 평가해보자. 샌델 교수는 지금까지 토론한 내용을 자유주의사회, 능력주의사회와 롤스의 평등이론으로 요약하고, 현대사회의 임금격차가 공정한지 질문을 던진다. 판사의 평균 연봉은 20만 달러가 약간 안 되는 반면 TV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주디 판사는 열 배가 넘는 250만 달러를 번다. 미국 교사들의 연봉은 4만 달러가 약간 넘는데 Late Night Show를 진행했던 데이비드 레터맨의 연봉은 310만 달러다. 이런 격차는 공정한가? 존 롤스는 아니라고 한다. 개인이 성공하는 데는 타고난 행운, 뛰어난 유전자, 좋은 가정환경처럼 후천적 노력과는 무관한, 도덕적으로 볼 때 자의적인 요소들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연히 자기가 속한 사회가 자기 재능을 높이 평가해줬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리 뛰어난 법률가도 수렵사회나 전사를 우대하는 사회에 태어났다면 지금처럼 크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그렇다고 법률가로서 그 사람의 재능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을까? 현재 상대적으로 빈곤한,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를 점한 사람에게도 같은 얘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도덕적으로 볼 때 이런 자의적 요소들이 분배의 기준이 된다면 그 원칙은 정당하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공정한 분배정의는 무엇일까? 롤스는 분배의 문제를 도덕적 자격이 아닌 합법적 권한의 문제로 본다. 이 둘을 구분하는 도덕적 함의는 무엇인지 알아보자.

 

<강의 내용>

 

오늘은 분배의 정의에 대해서 토론해 보겠습니다. 수입과 재산, 권력과 기회는 어떤 원칙에 따라 분배돼야 할까요? 존 롤스는 이 질문에 상세하게 대답했죠. 오늘은 이 대답을 검토하고 평가해 봅시다. 지난 시간에 우리가 한 사고의 실험들은 존 롤스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롤스가 왜 정의의 원칙들이 가상의 계약에서 가장 잘 도출된다고 했는지 알기 위해서죠. 핵심은 가상의 계약이 원초적으로 평등한 입장에서 맺어지기 때문이란 거죠? 롤스가 말한 ‘무지의 장막’에 가린 상태에서요. 여기까지는 다 이해됐죠?

 

그럼 롤스가 말한 무지의 장막 뒤에서 선택될 원칙들이 무엇인지 알아봅시다. 롤스는 이런 대원칙들을 전제로 합니다. 공리주의는 어떤가요? 사람들이 원초적으로 평등한 입장에서 공동의 삶을 지배할 원칙을 정하나요? 공리주의 원칙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인데 롤스는 이 원칙이 거부될 것으로 봅니다. 무지의 장막에 가려진 사람들은 그 장막이 걷히고 실생활로 돌아가도 모두 존엄한 인간으로 존중받고 싶어 할 테니 말입니다. 불행히 소수집단으로 밝혀져도 억압받고 싶은 사람은 없겠죠.

 

따라서 우리는 공리주의를 거부할 겁니다. 그 대신 우리가 채택할 첫 번째 원칙은 기본적 자유의 평등입니다. 언론과 집회결사의 자유, 종교와 양심의 자유 같은 기본적 자유의 평등이죠. 비록 자기가 억압받고 멸시받는 소수집단 소속으로 밝혀진다고 해도 다수의 폭압을 원하진 않을 겁니다. 그래서 공리주의가 거부된다고 한 거죠. 롤스에 따르면 공리주의의 오류는 사람들 사이의 개인적 차이를 망각하거나 경시한 것입니다. 무지의 장막에 가린 원초적 입장에서는 그런 차이를 감안해 공리주의를 거부하겠죠. 우리는 어떤 대가를 주더라도 기본적인 권리와 자유를 팔아넘기지 않을 겁니다. 이것이 첫 번째 ‘평등의 원칙’입니다.

 

두 번째는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과 관련해 우리는 어떤 원칙에 합의할 것인가?’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부자일지 가난할지 건강할지 아닐지 모르는 상태입니다. 어떤 집에서 태어났는지도 모릅니다. 엄청난 부를 상속받을 집안인지 가난한 집안일지 아직은 모릅니다. 그래서 처음엔 이렇게 말하겠죠. ‘우리의 수입과 재산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게 어떨까요?’ ‘어떤 경우에도 안전하게요.’ 그러다가 더 좋은 방법이 떠오릅니다. 불행하게도 자기가 최하위계층으로 밝혀져도 검증을 거친 평등의 원칙에 합의하면 됩니다. 롤스가 말한 ‘차등의 원칙’이죠. 즉, 소외계층에게 혜택을 준다는 조건하에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을 허용하자는 겁니다. 소득과 재산의 불평등을 완전히 거부하는 게 아니라 일부는 허용하되 시험을 하자는 거죠. 이 원칙으로 모두 혜택을 입는지, 특히 롤스가 말한 최하위계층이 혜택을 입는지 보자는 겁니다.

 

롤스의 무지의 장막 뒤에서 용납될 불평등은 이것뿐이고 가장 소외된 계층이 혜택을 입는 이런 불평등은 정당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마이클 조던은 일 년에 3100만 달러를 번다고 했죠? 빌 게이츠의 재산은 수백억 달러고요. 이런 불평등도 차등의 원칙에 따라 허용될까요? 이런 임금격차가 허용되는 경우는 오직 제도적으로 극빈 계층이 혜택을 볼 때뿐인데 그런 제도는 어떤 제도일까요? 막상 현실에서는 적합한 인재의 영입을 위해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할 형편인데 말입니다. 또 그런 인재를 채용해야 실제로 최하위계층에게 도움이 되죠.

 

엄밀히 말해 롤스가 말한 ‘차등의 원칙’은 무지의 장막 뒤에서 선택되는 것입니다. 무지의 장막 뒤에서 이 두 원칙이 선택될 것이라는 롤스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 볼까요? 이 원칙들이 채택될 것 같지 않다는 분? 2층 맨 앞줄 학생 얘기부터 들어 볼까요?

 

- 교수님께선 우리가 정책이나 정의를 토론하고 결정하는 기준이 최하위계층이 될 거라지만 그 근거를 모르겠습니다. 최상위계층은 왜 안 되죠?

- 네, 이름이 뭐죠?

- 마이크요.

- 마이크, 좋은 질문이군요. 무지의 장막에 가려 있다고 치고 사고의 실험을 해 봅시다. 마이크라면 어떤 원칙을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겠습니까?

- 우리가 하버드에 다니는 것도 최고가 되려는 열망이잖아요. 하버드는 일류명문대이고 태어날 때부터 제가 얼마나 똑똑했든 이 작위를 얻기 위해 지금까지 노력했는데 하버드가 자격도 없는 학생들을 뽑겠다면 우리도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진 않았을 겁니다.

- 그래서 어떤 원칙을 택하겠다는 거죠?

- 제 경우엔 능력이 기준이 되는 원칙이죠. 어떤 형태가 됐든 노력에 따라 보상해주는 제도를 택할 겁니다.

- 그럼 무지의 장막에 가린 사람들의 노력에 보답하는 능력주의를 택할 거란 뜻인가요? 네,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학생은요? 말씀하세요.

 

- 질문이 있는데 능력주의의 전제가 모든 사람이 평등한 수준에서 자기가 한 만큼만 보상을 받는 것이라면 여기 오기 위해 처음 교육을 받을 때부터 어떤 이점을 누렸든 상관없다는 뜻인가요?

- 핵심은 공리주의가 됐든 무엇이 됐든 우리의 바람은 전체 부의 극대화란 건데 능력을 보상하는 제도는 지금까지 모두에게 최선의 제도로 충분히 검증됐다고 봅니다. 우리가 상위 2%에 속하든 나머지 98%에 속하든 결국 최하위계층의 삶을 향상시키는 것은 타고난 차이가 아닌 노력에 따라 보상을 하는 사회라는 거죠.

- 어떻게 노력으로만 보상을 하죠? 저 자신만 해도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 계속 유리한 조건에서 경쟁해 왔는데 다른 사람들이 저처럼 열심히 공부한다고 다 이런 학교에 올 것 같지는 않거든요.

- 그 점을 살펴볼까요? 이름이 뭐죠?

- 케이트요.

 

- 케이트 말은 일류대학에 입학한 능력도 주로 유복한 집에 태어나 사회, 문화, 경제적으로 온갖 혜택을 누렸기 때문이라는 건가요?

- 전 경제적 혜택을 말한 건데 다른 혜택도 다 포함되겠죠.

- 미국에서 가장 선호도 높은 146개 대학을 연구한 사람이 있는데 그 대학들에 다니는 재학생들의 경제적 배경을 살펴봤다고 합니다. 가계수입이 하위 25%에 속하는 학생이 몇 %나 됐을까요? 얼마인지 아십니까? 이 인기 대학들에 다니는 학생 중 3%만이 가난한 집 출신이고 70% 이상이 유복한 집 출신이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마이크 질문에 답해 봅시다.

 

롤스의 대답은 한 가지가 아니라 두 가였습니다. 정의의 원칙들, 특히 차등의 원칙을 옹호하는 논리죠. 한 가지는 무지의 장막 뒤에서 선택될 원칙들에 대한 공식적인 문제 제기로 어떤 사람들은 이런 말로 반박했습니다.

 

“사람들이 도박을 할 수도 있지 않나요?”

“무지의 장막 뒤에서 상류층이 될 가능성을 노리고 도박을 할 수도 있죠.”

 

이것이 롤스가 답해야 할 첫 번째 과제이고 원초적인 입장에서 그 논리를 옹호하는 게 두 번째 과제였는데 그 대답은 다음과 같은 도덕적 주장으로 요약됩니다. 롤스에 따르면 수입과 재산, 인생의 기회 분배는 자기가 한 게 아무것도 없는 요소들로 정해져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도덕적인 관점에서 볼 때 분배의 기준은 임의적인 요소들이 되면 안 되니까요. 롤스의 이런 견해는 몇 가지 대립하는 이론들과의 비교에서 잘 나타납니다. 첫 번째 정의 이론은 요즘 사람들 대부분이 거부할 이론입니다. 바로 봉건귀족주의죠.

 

봉건귀족제도에 따라 우리 장래가 할당되는 건 왜 잘못일까요? 롤스에 따르면 이것이 분명한 잘못된 이유는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게 출생이라는 우연이기 때문이죠. 귀족출신인지, 농노출신인지만 중요할 뿐 신분상승은 불가능합니다. 출생신분이나 그에 따른 기회는 스스로 어쩔 수 있는 게 아닌데요. 도덕적으로 볼 때 임의적인 요소들이죠. 따라서 봉건귀족주의에 대한 반대는 역사적으로도 입증된 것처럼 이런 생각으로 귀결됐습니다. ‘사람은 재능에 따라 경력을 쌓을 수 있다. 출생이란 우연에 관계없이 형식적 기회의 평등은 보장되어야 하며 모든 사회구성원은 어떤 직업이든 자유롭게 경쟁하고 복무하고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직업을 개방하고 각자가 가장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곳에 지원하게 되면 공정한 사회가 될 것이다.’

 

이미 토론한 바 있는 자유주의자들의 논리가 이런 건데 롤스는 이것이 진전된 생각이라고 했죠. 출생이란 우연을 불변의 것으로 간주하지 않을 건 진보지만 형식적인 기회의 평등을 보장한다 해도 자유주의의 통찰력에는 결국 한계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참가할 수 있는 달리기경주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어떤 사람은 출발점이 다르다면 그건 공정한 경주가 아니겠죠? 롤스가 보기에 이 제도의 가장 부당한 점은 도덕적인 관점에서 임의의 요소들이 분배에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훌륭한 교육을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 얼마나 좋은 가정에서 후원을 받고 직업윤리를 배우고 기회를 얻었는지 같은 임의성들이죠.

 

따라서 한층 진일보한 사회는 공평한 기회를 보장하는 사회인데 이 사회는 아까 마이크가 옹호한 능력에 보답하는 사회, ‘능력주의사회’입니다. 공정한 능력주의사회는 경주를 하기 전에 모두가 동일한 출발선에 설 수 있도록 제도화된 사회입니다. 제도적으로 평등한 교육이 보장되죠. 저소득층 자녀 지원제도 같은 교육제도 덕에 가난한 사람도 배울 기회가 생깁니다. 가정 형편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고 모두가 동일한 출발선에 서는 겁니다. 롤스는 능력주의사회를 어떻게 평가했죠?

 

“능력주의사회도 여전히 타고난 능력과 재능에 따라 부와 소득의 분배가 결정되는 상황이 허용된다.” - 존 롤스 -

 

롤스는 능력주의사회에도 한계가 있다고 했습니다. 자연의 추첨과 같은 도덕적 임의성을 바로 잡거나 고심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거죠. 모두를 동일한 출발선에 세우고 경주를 하면 누가 이길까요? 달리기 선수를 예로 들면 어떤가요? 당연히 더 빠른 선수가 이기겠죠? 그런데 빨리 달리는 운동능력을 타고난 게 자기가 한 건가요? 롤스는 말하죠. ‘모두를 같은 출발선에 세우는 능력주의사회조차도 사회적 우연성이나 성장환경을 배제할 수 없고 여전히 타고난 능력과 재능에 따라 부와 소득의 분배가 결정되는 상황이 허용된다.

 

따라서 롤스는 소득과 재산의 분배에서 도덕적 우연성을 배체한 원칙을 만들려면 마이크가 지지하는 능력주의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뛰어넘을까요? 출발지점이 다 같아도 여전히 누구는 빠르고 누구는 느려서 걱정인데 그건 어떻게 하죠? 극단적 평등을 주장하는 비판자들의 대안은 빠른 선수에게 납덩이를 단 신발을 신겨 불리하게 만드는 것뿐이라고 하는데 누가 그걸 원하겠습니까? 그럼 달리기경주를 하는 의미가 없죠. 롤스는 획일적인 재능의 평준화가 아니더라도 능력주의를 뛰어넘는 대안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회가 재능 있는 사람이 재능을 발휘하도록 허락하고 장려하되 그 재능으로 거둔 결실을 가져가는 데 어떤 자격조건을 부여해야 한다는 거죠. 이것이 바로 ‘차등의 원칙’입니다. 운 좋게 뛰어난 유전자에 당첨된 사람이 혜택을 본다는 기존의 능력주의 원칙에 가장 소외된 계층을 돕는다는 조건이 붙어야 한다는 건데, 예를 들면 마이클 조던은 일 년에 3100만 달러를 벌 수 있지만 세금으로 일부를 내 천부적 농구 기술이 없는 사람들 돕는다는 전제를 붙이자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빌 게이츠도 수십억 달러를 벌 수 있지만 도덕적으로 이 돈이 응당 자기 몫이라고 할 순 없죠.

 

“자연의 축복을 받는 사람이 그 행운으로 이익을 얻는 건 최소 수혜자의 상황을 개선한다는 전제하에 서다.” - 존 롤스 -

 

“자연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 그 행운으로 이익을 얻는 건 최소수혜자의 상황을 개선한다는 전제하에서다”라는 차등의 원칙으로 도덕적인 임의성을 배제하려는 겁니다. 롤스는 도덕적인 관점에서 임의적인 요소들이 분배를 결정하게 놔두면 귀족주의를 거부하고 자유시장사회가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모두를 동일한 출발선에 세우는 능력주의사회도 우리를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사회는 최하위계층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행운을 타고난 사람이 발휘한 재능으로 혜택을 입는 사회니까요. 어떻습니까? 설득력이 있나요? 도덕적 임의성을 배제하자는 이 주장에 설득력이 없다는 사람 있습니까?

 

- 말씀하세요.

- 전 지나치게 낙관적인 생각인 것 같아요. 재능 있는 사람이 자기 성과를 그런 식으로 뺏긴다는 걸 알아도 그렇게 열심히 일할까요? 재능 있는 사람이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는 길은 능력주의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 능력주의에선... 이름이 뭐죠?

- 케이트요.

- 케이트와 마이크라면 불안하지 않겠어요? 능력주의사회에선 아무리 공정한 기회가 주어져도 타고난 재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남들을 누르고 과분한 보상을 받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어떤가요?

- 그건 확실히... 임의적인 요소지만 확실히 임의적이지만 그걸 바로 잡기엔 부작용도 있고...

- 의욕이 떨어지니까요?

- 의욕이 떨어지니까요, 네.

 

- 마이크 생각은요?

- 그럼 여기 모인 우리는 모두 과분한 영광을 누려온 거네요? 우리가 창조한 건 아무것도 없으니 자부심을 가져서도 안 되고요. 그렇게 따지면 저희가 화난 건 차치하더라도 사회 전체적으로도 거부반응을 보일 겁니다. 저보다 잘 달리는 사람이 피해를 준다고 마지막 몇 미터는 저한테 양보하게 하면 제 뒤도, 그 뒤도 계속 양보해야 하는데...

- 마이크의 지적은 노력에 앞선 노력이죠? 남보다 앞서고 성공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면 노력에 합당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게 마이크의 주장에 담긴 생각 아닌가요?

- 당연하죠. 마이클 조던을 부르세요. 왜 3100만 달러를 버는지 변호를 시키면 조던이 최고가 되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게 될 겁니다. 이건 다수가 소수를 억압하는 거죠. 조던을 헐뜯기는 쉬우니까요.

- 좋아요, 바로 그 노력도... 동조하는 사람이 꽤 많군요.

- 적어도 몇 명은 설득시켰네요.

- 그 노력에 롤스는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어떤 사람의 정직하게 노력하려는 근성과 노동윤리조차도 얼마나 좋은 집안 태생인가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데 그런 집에서 태어난 게 자기 노력의 결과는 아니다. 자, 이제... 아직 안 끝났어요. 설문조사를 하나 해 볼까요? 경제력의 차이는 너무 크니까 그건 빼고 생각해 봅시다.

 

심리학자들은 출생순서에 따라서도 노동윤리, 승부근성에 큰 차이가 난다는데 이 중에 첫 째로 태어난 사람 손들어 보세요. 실은 저도 첫째입니다. 마이크도 손든 거 다 봤어요. 능력주의를 적용할 경우 노력은 보상을 받아야겠지만 롤스의 지적처럼 노력, 근성, 노동윤리조차 출생순서에 따라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까? 그건 자기가 했나요? 마이크 첫째로 태어난 건 마이크가 한 일인가요? 그럼 왜 롤스가 반대했을까요? 수입이나 재산, 기회의 분배기준이 도덕적으로 볼 때 왜 그런 임의적 요소들이어야만 하죠? 이건 롤스가 시장사회에 던지는 질문이자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인데 다음 시간에 계속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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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배정의론

 

자유주의 - 자유시장경제

능력주의 - 공평한 기회 보장

공평주의 - 롤스의 차등원칙

 

지난 시간에 했던 놀라운 조사결과를 기억하십니까? 출생순서에 대한 설문조사였죠. 여기 모인 학생 중 몇 %가 첫째로 태어났다고 손을 들었나요? 75~80%쯤 됐나요? 분배의 정의이론들을 논할 때 그 사실이 왜 중요했죠? 지난 시간에 토론 한 세 가지 분배 정의 이론 생각나십니까? 수입과 재산, 인생의 기회와 좋은 것들의 분배방식에 관한 세 가지 대답이었죠. 지금까지 살펴본 자유주의의 대답은 정당한 분배체제는 자유로운 교환이 이뤄지는 자유시장경제라는 겁니다. 그 배경엔 형식상의 평등이 깔려 있죠. 직업은 모두에게 열려 있다는 겁니다. 롤스가 보기에 이것은 봉건귀족주의나 카스트 제도보다는 우월한 사회죠? 어떤 직업이든 누구나 경쟁할 수 있고 재능에 따라 경력을 쌓을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정당한 분배는 자유로운 교환의 결과이자, 자발적 거래의 결과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요. 롤스는 바로 반박합니다. 우리가 가진 게 형식상의 평등, 모두에게 열린 직업뿐이라면 그 결과는 공정하지 않을 거라고요. 어쩌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한테 유리한 결과가 나올 테니까요. 어쩌다가 좋은 교육의 혜택을 누린 사람들이 유리할 테니까요. 출생이란 이 우연이 인생의 기회를 배분하는 공정한 기준이 될 수는 없잖아요? 롤스는 많은 사람들이 이 논리의 부당함을 눈치 채면 공정한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는 체제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능력주의사회로 귀결됩니다. 공평한 기회를 보장하는 사회죠. 하지만 롤스의 말처럼 모두를 같은 출발선에 세운다 해도 결과적으로 누가 이길까요? 당연히 빠른 사람이 이기겠죠. 따라서 이런 임의적 우연성들에 따라 분배를 하는 게 도덕적으로 불안하다면 그런 고민에서 도달하게 되는 결론은 롤스가 말한 민주적인 개념입니다. ‘차등의 원칙’으로 정의되는 더 공평한 분배의 원칙에 도달하죠. 롤스는 천부적 재능과 능력의 차이를 바로 잡거나 보완하는 방법에는 다 같은 결과가 나오게 만드는 획일한 평등만 있는 게 아니라 이 우연성을 해결할 방법이 또 있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천부적인 행운으로 이익을 보게 하되 조건을 다는 거죠. 가장 소외된 계층과 그 이익을 나눈다는 조건을요.

 

 

 

이 원칙이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는지 우리 사회의 임금격차를 통해 알아볼까요? 현재 미국 교사의 평균연봉이 대충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3만 5천 달러? 그보다 많은 4만~4만 2천 달러입니다. 그럼 데이비드 레터맨은 얼마나 벌 것 같습니까? 학교 교사보다는 많겠죠? 3100만 달러가 레터맨의 연봉인데 이건 공정한가요? 레터맨이 교사보다 더 많이 버는 게 공정한가 묻는다면 롤스의 대답은 사회의 기초구조가 어떻게 설계됐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할 겁니다. 레터맨의 3100만 달러에 과세한 돈으로 사회적 약자를 돕는 구조라면 공정하다고 할 수도 있죠.

 

임금격차의 또 다른 사례를 살펴보죠. 미국대법원의 한 판사 이야기입니다. 판사들은 얼마나 벌죠? 20만 달러가 좀 안 됩니다. 가령 지금 보시는 샌드라 데이 오코너 판사의 경에에는요. 그런데 오코너 판사보다 훨씬 많이 버는 판사도 있습니다. 누군지 아세요? 주디 판사요. 맞아요. 어떻게 알았죠? 그 프로그램 보나요? 아뇨. 어쨌든 맞는데 얼마나 버는지 아십니까? 바로 이 분인데 무려 2500만 달러를 법니다. 이건 정당한가요? 공정한 일입니까? 그건 제도의 바탕에 깔린 차등원칙에 부합하는지 아닌지에 달려 있겠죠.

 

소득과 재산에서 선두를 달리는 사람이 세금을 내 가장 소외된 계층이 혜택을 본다면 말입니다. 이제 다시 이 임금격차 문제로 돌아가 보죠. 일반판사와 TV판사의 임금격차 문제요. 마커스가 즐겨보는 프로그램 진행자죠. 그 전에 살펴볼 이론들이 있는데요. 롤스가 진일보한 평등이론으로 제시한 차등원칙에 대한 반박들을 살펴봅시다. 롤스의 차등원칙에 대한 반박은 적어도 세 가지가 있습니다.

 

■ 차등원칙에 대한 반박들

 

1. 인센티브의 문제

2. 노력의 문제

3. 자기소유의 문제

 

첫째는 지난 시간 토론에서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표한 인센티브에 대한 문제입니다. 세금으로 70, 80, 90%를 내야 하면 마이클 조던은 농구를 그만두겠죠? 데이비드 레터맨도 쇼 진행을 그만둘 겁니다. 최고경영자들은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하죠. 자, 롤스를 지지하는 학생 중에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는 이 반론에 답변한 학생 있나요?

 

- 네, 일어나서 말씀하세요.

- 롤스는 극빈 계층을 가장 잘 돕는 길은 수많은 차이를 인정하는 거라고 했습니다. 지나친 평등을 주장하면 극빈 계층이 레이트 나이트 쇼를 볼 수도 없고 최고경영자들이 사업을 접어서 실직자가 될 수도 있으니까 인센티브를 충분히 보장하는 과세제도의 형평을 찾아야 극빈 계층도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거죠.

- 좋습니다. 이름이 뭐죠?

- 팀이요.

- 팀의 말은 실제로 롤스가 인센티브를 고려했다는 거죠? 임금격차와 과세율 정도 인센티브를 고려해 용납된다고 했지만 팀의 지적처럼 인센티브를 고려해야 하는 이유는 경제 전체의 분배 몫에 변동이 생겨서가 아니라 동기부여나 동기박탈이 최하위계층의 복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죠. 맞나요?

- 네.

- 고마워요. 롤스도 그렇게 말했을 것 같군요.

 

사실 차등의 원칙을 설명한 롤스의 <정의론> 17절을 보면 롤스는 인센티브를 허용했습니다. ‘재능을 타고난 사람은 단지 재능이 많다는 이유로 이득을 얻어선 안 된다. 사회에 빚진 훈련과 교육비용을 갚고 자신의 재능을 이용해 그런 행운을 얻지 못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 그러니까 인센티브는 허용되고 과세율 조정도 가능합니다. 데이비드 레터맨이나 마이클 조던, 빌 게이츠한테 너무 많이 빼앗으면 결국 피해를 입는 건 최하층이니까요. 그게 판단기준이죠. 따라서 인센티브는 차등원칙에 대한 결정적인 반박이 될 수 없습니다.

 

그보다 중요하고 까다로운 반박이 두 가지 더 있습니다. 한 가지는 능력주의 신봉자들의 반론인데 이들이 강조하는 건 노력입니다. 자기가 열심히 일해서 번 것은 당연히 자기 몫이라는 주장이죠. 노력하면 도덕적 자격이 생긴다는 논리입니다. 마지막은 자유주의들의 반론인데 이 반대는 ‘자기소유’라는 개념을 환기시키려는 시도입니다.

 

“삶은 공평하지 않다. 자연이 낳은 불평등을 정부가 바로잡을 수 있다고 믿고 싶을 때도 있다.” - 밀턴 프리드먼 -

 

“자연의 분배 방식은 공정하지도 불공정하지도 한다. 인간이 태어나면서 특정한 사회적 위치에 놓이는 것 역시 부당하지 않다. 그것은 단지 타고난 요소일 뿐이다. 공정이나 불공정은 제도가 그러한 요소들을 다루는 방식에서 생겨난다.” - 존 롤스 -

 

차등원칙은 개인의 천부적 재능을 사회의 공동자산으로 취급해 자신의 소유주는 바로 자기라는 개념을 침해한다는 거죠. 일단 자유주의자들 쪽에서 제기한 반박부터 다뤄볼까요? 밀턴 프리드먼은 <선택의 자유>란 책에서 말합니다. ‘삶은 공평하지 않다. 자연이 낳은 불평등을 정부가 바로잡을 수 있다고 믿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프리드먼은 말합니다. 이 불균형을 바로잡는 길이 획일적인 결과의 평등뿐이라면 모두 결승선에 똑같이 들어오게 하는 것뿐이라면 그 결과는 재앙일 거라고요. 이건 반박하기 쉬운 논리죠? 롤스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롤스의 <정의론>중 가장 호소력이 강한 이 구절은 17절에 있는 내용입니다. ‘자연의 분배방식은’ 자연이 사람에게 나눠준 재능을 뜻하죠? ‘공정하지도 불공정하지도 않다. 인간이 태어나면서 특정한 사회적 위치에 놓이는 것 역시 부당하지 않다. 그것은 단지 타고난 요소일 뿐이다.’ 롤스의 이 말은 밀턴 프리드먼 같은 자유방임주의자들을 겨냥한 말로 ‘삶은 공평하지 않지만 극복해라’ ‘극복하고 그 불평등에서 흘러나오는 이익이라도 극대화하자’에 대한 답이죠.

 

사실 프리드먼 같은 자유방임주의자보다 롤스에게 더 강력한 반론을 제기한 쪽은 ‘자기소유’를 주장한 자유주의자들로 그 대표주자가 전에 말한 노직입니다. 이들의 입장은 저소득층 자녀 지원제도와 공립학교제도로 모두가 좋은 학교에 다니고 동일한 출발선에 서게 하는 건 좋다고 합니다. 하지만 공립학교를 만들려고 세금을 부과하면 사람들의 의사에 반해 세금을 부과하면 그건 강압적인 절도행위라는 거죠. 레터맨의 3100달러의 일부를 가져가면 공립학교지원을 위해 그의 의사에 반해 세금을 떼어 간다면 국가가 하는 일은 도둑질과 다름없는 강압행위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재능을 소유한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고 봐야지 안 그러면 사람들을 이용하고 강요하게 될 것이라는 게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이니까요.

 

롤스는 이런 반박에 뭐라고 답했을까요? 롤스는 ‘자기소유’란 개념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차등의 원칙을 논하면서 그가 도덕적으로 강조한 것은 온전한 의미에서 우리의 소유주는 우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거죠. 그렇다고 이 말이 곧 국가가 내 목숨을 마음대로 빼앗을 수 있다는 건 아닙니다. 무지의 장막 뒤에서 우리가 합의한 첫째 원칙인 ‘평등의 원칙’ 때문이죠. 바로 언론과 종교, 양심의 자유 같은 기본적인 자유의 평등원칙 말입니다. 이 ‘자기소유’라는 개념이 항복할 경우는 단 하나, 이런 의문을 품게 될 때일 겁니다.

 

‘나는 정말로 나를 소유하고 있는가?’ ‘시장경제에서 내 재능을 발휘해 얻은 이익은 전적으로 내 노력의 결과일까?’ 생각해 보면 롤스처럼 아니라고 하겠죠. 우리는 권리를 옹호하고 개인을 존중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습니다. 굳이 자기소유란 개념을 수용하지 않아도요. 이것이 자유주의자들에 대한 롤스의 대답입니다.

 

이번엔 능력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의 반박을 살펴봅시다. 노력이 도덕적 자격의 잣대라는 논리죠? 재능을 계발하려고 열심히 노력한 사람은 그 재능으로 거둔 이익을 마땅히 차지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이에 대한 롤스의 대답은 지난 시간에 약간 다뤘습니다. 출생순서를 조사했을 때 말입니다. 롤스의 첫 번째 대답은 노동윤리초자도 정직하게 노력하려는 근성조차도 후천적 노력 여하에 상관없는 가정환경이나 사회적, 문화적 우연에 좌우된다는 거죠. 그게 우리 노력의 결과는 아니잖아요? 우리가 대부분 첫째로 태어난 게 우리 노력의 결과입니까? 복잡한 심리적, 사회적 요인 때문에 출생순서의 차이가 근성이나 성과, 노력의 차이로 연결된다는 데도요? 그게 한 가지 대답이고 두 번째 대답은 이겁니다.

 

노력을 강조하는 사람들조차도 사실은 노력으로 도덕적 자격을 논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건설현장인부가 둘 있는데 건장한 인부는 한 시간에 벽 네 개를 거뜬히 쌓는 반면 약하고 왜소한 인부는 같은 일을 하는데 사흘이나 걸린다고 합시다. 아무리 능력주의를 신봉해도 왜소한 인부가 더 노력했으니 돈을 더 줘야 한다고 말하진 않겠죠? 따라서 노력은 핑계에 불과하다는 게 능력주의자들에 대한 두 번째 답변입니다.

 

아무리 노력을 들먹여도 이들이 믿는 분배의 도덕적 기준은 노력이 아니라 얼마나 많이 공헌했는가죠. 문제는 이 공헌도 노력만이 아닌 타고난 재능과 능력 때문이고 애초에 우리가 그런 재능을 갖게 된 게 우리 노력의 결과는 아니라는 겁니다. 이 주장을 다 받아들였다고 합시다. ‘능력주의자들에게도 중요한 건 노력이 아니라 공헌한 정도인데 그 노력조차 전적으로 우리 노력의 결과는 아니다.’ 그게 무슨 뜻이냐고 반론이 계속되겠죠. 그 말은 곧 도덕적 자격은 분배정의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뜻이냐고 묻는다면 네, 그렇습니다. 분배정의는 도덕적 자격과 무관하죠. 여기서 롤스는 중요하면서도 미묘한 차이를 소개합니다.

 

‘도덕적 자격’과 ‘합법적 기대를 요구할 권리’를 구분하는 거죠. 도덕적 자격과 합법적 권리는 어떻게 다를까요? 확률게임과 실력게임으로 나눠서 생각해 봅시다. 확률게임부터 볼까요? 매사추세츠 주 복권추첨에서 제 번호가 뽑혔다고 합시다. 전 그 당첨금을 받을 권리가 있죠? 하지만 당첨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는 할 수 있지만 운으로 번 돈이니 애초에 제가 이 돈을 받을 ‘자격’은 없습니다. 이게 ‘합법적 권리’죠. 이번엔 복권추첨과는 다른 게임 실력게임을 봅시다. 보스턴 레드삭스가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했다고 합시다. 우승한 팀은 트로피를 받을 권리가 있죠? 문제는 실력게임에서도 언제나 제기되는 ‘승자가 될 자격이 있는가?’란 질문입니다. 이론상으로 이 둘은 항상 구분되니까요. 어떤 규칙 하에서 승자의 권리를 얻는 것과 그전에 승자의 자격이 있는지는 다른 문제잖아요. 이 권리의 선행기준이 도덕적 자격입니다. 즉, 롤스는 분배정의가 도덕적 자격이 아니라 합법적 기대에 대한 권리의 문제라고 했죠.

 

롤스의 말을 인용해 보죠. ‘공정한 체제란 사람들의 합법적 권리에 부응하는 체제다. 이 체제는 사회제도들에 보장된 사람들의 합법적 기대를 충족한다. 그러나 그 합법적 권리는 사람들이 가진 본질적 가치에 비례하지 않으며 그와 무관하다. 사회의 기본구조를 규제하는 정의의 원칙들은 도덕적 자격을 언급하지 않으며 분배도 그러한 자격에 좌우되는 경향을 보이지 않는다.’

 

롤스는 왜 이런 구분을 했을까요? 도덕적으로 어떤 점 때문이죠? 일단 노력하면 자격이 있다는 논리를 부정하기 위해서라는 건 아실 테고 다음은 또 다른 임의성을 배제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내 재능으로 남들보다 앞서는 게 순전히 내 노력의 결과인지를 따지기 전에 내가 우연히 내 재능을 포상하는 사회에 태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거죠. 레터맨도 자기 재능을 굉장히 높이 평가해주는 사회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능글맞은 농담이 통하는 건데 그게 레터맨이 노력한 결과인가요? 운 좋게 그런 사회에 태어났기 때문이죠. 어쨌든 이 두 번째 우연적 요소도 우리 노력의 결과라고 볼 순 없겠죠. 순전히 자기 재능과 노력으로만 얻은 게 있다고 해도 대답은 여전히 마찬가진데 그 이익은 도덕적 관점에서 볼 때 임의의 요소에 의해 좌우된다는 겁니다.

 

시장경제에서 내 재능으로 얻은 포상은 사회가 그것을 원하느냐에 달려있죠. 수요와 공급에 의해 좌우되는데 그게 내 노력의 결과는 아니죠. 그걸로 도덕적 자격을 말할 순 없습니다. 공헌을 말할 때도 중요한 건 사회가 어떤 자질을 높게 평가하느냐 입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우리도 대부분 운이 좋아서 우리 사회가 높게 평가하는 자질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사회가 원하는 걸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이죠. 자본주의사회에선 기업가정신이 도움이 됩니다. 관료주의사회에선 상관들과 잘 지내는 능력이 도움이 되죠. 대중민주주의사회에선 화면발이 중요합니다. 즉, 얄팍한 소리가 잘 통하다는 거죠. 소송만능사회에선 법학대학원이 유망하니 법학대학원입학시험을 잘 보면 좋습니다.

 

이게 모두 우리 노력의 결과는 아니죠. 이런 재능을 가진 우리가 만약 기술이 발달한 사회나 고도의 소송사회가 아니라 수렵사회나 전사사회에 산다면 우리 재능은 어떻게 될까요?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겠죠? 다른 재능을 계발해야 할 수도 있고요. 그렇다고 우리의 가치나 미덕이 지금보다 모자라는 건가요? 우리 사회보다 그런 사회에 살면 우리가 더 무능해지는 겁니까? 롤스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합니다. 물론 돈을 덜 벌수는 있지만 지금보다 권한이 줄어든다고 가치 없거나 자격이 모자란 사람이 되는 건 아니죠. 핵심은 바로, 지금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특권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도 사회가 포상하는 재능을 덜 가진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도덕적 자격과 합법적 권리의 구분이 도덕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겁니다. 우리는 재능을 발휘해 게임규칙이 약속한 혜택을 누릴 권리는 있지만 어쩌다가 우리가 가진 풍부한 자질을 높이 평가하는 사회에 사는 걸 당연시하는 건 잘못이자 착각입니다. 지금까지 수입과 부의 문제를 다뤘는데 기회와 명예의 문제는 어떨까요? 일류대학 진학 기회를 분배하는 문제는 어떨까요? 맞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대부분 첫째로 태어나 열심히 공부하고 끝까지 재능을 계발해 이 자리에 온 거죠. 하지만 롤스는 묻습니다. 여러분은 도덕적으로 어떤 입장입니까? 여러분이 잡은 기회에 따르는 혜택을 어떻게 보십니까? 여러분은 이런 대학에 다니는 걸 포상이나 명예의 문제로 보십니까? 열심히 노력했으니 당연한 대가로 보십니까? 아니면 이 자리를 기회나 명예, 합법적 권리의 상징으로 보십니까? 그런 혜택은 어떻게 즐기느냐에 따라 정당화될 수 있다는 입장입니까? 우리 사회의 최하위계층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면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 롤스의 차등원칙이 던지는 질문입니다. 이것은 조던과 레터맨, 주디 판사의 고액연봉을 논할 때뿐 아니라 일류대학 진학 기회를 논할 때도 던질 수 있는 질문인데 이 논의는 다음 시간에 소수집단우대정책을 다르면서 계속해 보죠.

 

 

* 저작권은 PBS / Harvard University에 있고, 번역은 EBS 방송에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상업적인 용도는 사용을 금합니다.

출처 : 책을 벗 삼아
글쓴이 : 문화재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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