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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공정사회 - 5

다니엘22 2011. 9. 5. 04:36

 

공정사회 - 5

◈ MB 정부의 ‘공정사회 談論’이 성공하려면

- “스스로를 돌아보고 국민과 소통하는 것이 공정의 출발점‘

- 학자와 시민단체, “당신들이 공정사회를 운운할 자격이 있느냐” 반문

- “공정성 담론에 대한 외부 비판과 구체적인 실천방안부터 준비했어야”

- “공정성의 의미 속에 ‘도덕성’이 있어야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사회가 가능”

 

 

 

“공정성과 거리가 먼 정부로 각인(刻印)된 상황에서 ‘공정사회 구현’을 외치고 나온 것은 1980년대 초 전두환 정권의 구호인 ‘정의사회 구현’을 연상시키기에 충분”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9월 5일 청와대에서 열린 2010 장차관 워커숍에서 공정사회 구현을 위한 국정운영 방향에 대해 참석 장차관들에게 당부의 말을 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공정성(公正性) 담론’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작년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정한 사회 구현’을 언급한 뒤부터다. 당시 이 대통령은 “기득권자가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득권자란 ‘공직자, 권력을 가진 자, 힘을 가진 자, 돈 많고 잘사는 자’임을 유추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이 ‘기득권자의 공정성’을 언급한 것은 한국사회 내에 계층·계급 간 불평등이 지속적으로 누적되고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중앙대 사회학과 신광영(申光榮) 교수는 “계급구성원의 불만은 일정수준에 달하면 극적으로 폭발하는 문턱 효과(threshold effect)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사회에 대한 이 대통령의 ‘불공정 인식’이, 빈곤층의 불만이 극적인 양상으로 격해지고 있음을 의미하는지, 반대로 기득권자의 특권과 부정이 극심하다는 뜻인지, 아니면 둘 다를 포함하는 것인지는 다소 모호하다.

 

 

다만,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서민과 노동자들의 불만이, 정치(친이·친박 정쟁과 좌우대립), 공직사회(측근·보은·고소영 인사와 전관예우), 노동시장(고용불안과 높은 물가), 주택(전세대란), 교육(사교육과 비싼 등록금, 대학 경쟁력 부실), 복지(복지 포퓰리즘과 양극화) 등 전 영역에서 누적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불공정이 이미 공정을 압도하고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민주주의의 버팀목이자 양극화를 중화하는 한국의 중산층 살림이 쪼그라들고 있고”(고려대 정외과 임혁백 교수), 지난해 ‘외교부 특채’ 논란의 경우처럼 ‘법 앞의 평등’ 원칙을 무시하고 ‘법을 초월한 특권’을 남용한 것이 국민의 분노를 촉발시켰다.

 

 

◈ “부자가 없으면 가난 역시 넉넉할 뿐이라네”

그래서 학자들과 시민 사회단체들은 MB 정부를 향해 눈을 부릅뜨고 반문한다.

 

“당신들이 공정사회를 운운할 자격이 있느냐”고.

 

부산대 한문학과 강명관(姜明官) 교수는 최근 성호(星湖) 이익(李瀷·1681~1763)의 《성호사설》을 현대적으로 풀이한 《성호, 세상을 논하다》(자음과 모음 刊)를 펴냈다. 그는 “책을 쓰며 성호가 살던 조선후기 사회가 아니라 지금 세상을 곱씹게 하였다. 세상은 많이 바뀌지 않은 것 같다. 양반과 상것은 사라졌지만, 그 둘의 관계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며 “다만 모습이 바뀌었을 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성호 이익은 ‘통치자가 백성의 사정을 모르는 것이 그들이 펼치는 정치의 가장 큰 오류’라며 이렇게 충고했다고 한다.

 

 

<어리석은 백성이 굶주림과 추위에 몰린 나머지 도둑이 되어 살길이 찾으니 그것은 ‘이’와 같은 신세라고 할 것이다. 이는 옷의 솔기에 숨어 살면서 사람을 물지 않으면 살아갈 방도가 없다. ···이의 처지에서 차라리 죽을지언정 사람을 물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이는 사람을 깨물지 않으면 굶어 죽고, 깨물면 또 (사람의 손에) 불타 죽고 만다. 어리석은 백성이 도둑이 되어 살길을 찾으니, 부득이 잡아 죽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실정을 보면 또한 동정할 만하다> (《성호사설》제12권 <인사문> 중에서)

 

 

강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국가와 사회, 개인을 작동시키는 원리를 ‘시장전체주의’라고 꼬집었다. 다시 말해 ‘경쟁’이다. 그는 “이미 불공정한 사회에서 공정한 경쟁이 성립할 수 있는냐”며 이렇게 말했다.

 

 

“예컨대 키가 130cm인 초등학생과 키가 180cm인 대학생 사이에 공정한 100m 경기가 있을 수 있다고 보나요? 이마트와 홈플러스는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지만, 이마트와 동네수퍼는 경쟁이 애초에 안 됩니다. 그런데 동네수퍼가 ‘노력’해서 이마트와 공정경쟁을 하라면 말이 됩니까? 아마도 MB 정부의 ‘공정’이란 말은 현실의 불평등을 감추기 위해 내세운 어젠다가 아닌지 의심스러워요. 아니면 ‘공정’이란 말을 깊이 성찰해 보진 않았거나 말이죠.

 

 

이런 말은 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사회구성이 이미 ‘공정’한 상태의 경쟁이 불가능한 사회가 됐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벌써 귀족화한 소수의 기득권층이 지배하는 사회가 됐어요. 양극화 사회 내지 이중(二重)국가가 된 것이죠. 그러니, 귀족과 평민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불공정한 경쟁의 결과,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불평등(학벌 차별) 따위의 근원적인 불평등이 생겨났다”며 “공정하려면 사회적 경제적 약자에 대한 제도적인, 현실적인 지원책을 만들어야 한다”며 《성호사설》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두보의 시에 “귀한 자가 없으면 천한 사람도 슬퍼할 것 없고, 부자가 없으면 가난 역시 넉넉할 뿐이라네” 하였다. 천하가 모두 천하고 가난한 사람이면, 근검하게 사는 것이 무어 어렵겠는가?> (《성호사설》제10권 <인사문> 중에서)

 

 

◈ 정치인에 공정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모르다니...

MB 정부가 추진하는 ‘공정한 사회 구현’에 국민이 냉담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고려대 철학과 이승환(李承煥) 교수는 “‘법’의 적용, 경제적 ‘몫’의 분배, ‘인사권’의 행사 등 국가의 주요영역이 대단히 편파적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라며 “정부는 말로는 공정사회를 내세우지만, 실제로 ‘공정한 법 적용’, ‘공정한 경제정책’, ‘공정한 인사정책’을 찾아보기란 어렵고, 그 결과 ‘공정사회’라는 구호에서 진정성을 느끼는 국민이 거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반면, 강원대 윤리교육과 신중섭(申重燮) 교수는 “이 대통령이 후보시절 지나치게 구설에 올라 이미 공정성과 관련해 대단히 손상을 입었다. 이것은 대통령의 실제 과거행위와 무관하게 형성된 일반인의 인식”이라고 분석했다.

 

 

여기다 공정성과 거리가 먼 정부로 각인(刻印)된 상황에서 ‘공정사회 구현’을 외치고 나온것은 1980년대 초 전두환 정권의 구호인 ‘정의사회 구현’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는 것이 신 교수의 판단이다. 그는 “정치인이 공정성과 같은 고도의 윤리적 언어를 정책적으로 들고 나오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는 것도 이 정부는 미처 몰랐고 지금도 모르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이승환 교수는 “불신의 근원적인 씨앗이 MB 정부의 ‘실용주의 노선’에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원래 MB의 실용노선에서 공정이나 정의를 기대하기란 매우 어렵다. 공동체 내에서 대화가 단절되고 연대가 좌절됐기 때문에, 통치자 한 사람의 독단에 의해 ‘무엇이 실용적 가치인가’를 맡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교수의 말이다.

 

 

“실용주의 노선에서 대화와 연대가 사라지면 결국은 ‘원칙 없는 실리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어요. ‘원칙 없는 실리주의’에 반발하는 시민과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공정사회’라는 수사적(修辭的) 구호라도 내세워 ‘원칙 있음’을 천명하고 싶은 거지요. 정치에 수사적 구호가 동원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지만, 이러한 구호가 실제 정책의 방향과 너무도 동떨어져 있어 이를 바라보는 시민이 더욱 실망하고 냉담해진 것입니다”

 

 

◈ 치열한 논쟁이 없는 공정사회 談論

이명박 대통령이 ‘공정사회’를 화두로 던졌지만, 그동안 치열한 논쟁이 없었다는 것도 문제다. 물에 물 탄 듯, 정부가 공정성에 대한 담론을 주도하고는 있으나 시민사회의 일상적 담론으로 확산하지 못했다. 담론이 건강해지려면 국민과 시민사회의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 신중섭 교수의 말이다.

 

 

“공정성 담론을 둘러싼 외부 비판에 귀를 열고, 구체적인 실천방안에 대한 준비부터 갖췄어야 했어요. 그럼에도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이 MB 정부의 불행입니다. 그냥 경축사에 끼워 넣은 몇 마디가 뒤늦게 사회적으로 주목받아 계획 없이 ‘공정사회’ 담론으로 확대된 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불공정가 불평등, 부정의의 문제는 MB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의 오래된 상처이자, 모든 자본주의 사회가 안고 있는 질병이다. 따라서 공정사회 구현을 얘기할 때, 그 논의의 중심에는 ‘덜 불평등한 사회’ 혹은 ‘더 공정한 사회’를 지향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불공정성을 교정할 수 있는 권력의 정당성, 그것을 추동하는 사회세력이나 정치세력이 건강한가 여부다.

 

 

◈ 공정의 문제는 자본주의의 질병

MB 정부에 대한 불신을 털지 못한 상태에서, 누적된 한국사회의 불공정의 아픈 경험과 감정을 털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승환 교수의 지적이다.

 

 

“‘명실상부(名實相符)’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름’과 ‘실질’이 맞지 않는다면 이러한 이름은 허언(虛言)에 불과하지요. 공정사회라는 이름을 내세웠다면 실제로 사회의 각 영역이 공정해지도록 정책과 조치를 시행해야 합니다. 국가의 정책을 책임지는 정부·여당이 ‘표 좀 얻으려고 공약 한번 남발한 것이야!’ 하는 자세로 상황에 따라 마구 약속을 뒤집는다면 이를 바라보는 시민은 허탈할 수밖에 없어요. 말과 행실이 일치할 수 있도록 ‘언행일치(言行一致)’의 노력이 필요하며, 이름과 실질이 부할할 수 있도록 ‘명실상부’의 자세가 필요하다록 생각합니다.”

 

 

신 교수는 공정사회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선 “대규모 사정(司正)을 통해 힘있는 자의 특권과 특혜를 없애는 길이 국민 지지를 받는 방법”이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경축사의 ‘공정사회’가 주목받지 못하다가, 새삼 주목을 받게 된 계기는 외무부 장관 딸의 특채 사건, 국무총리 지명자와 장관 지명자의 인사 청문회와 낙마였습니다. 시민은 이런 사건이 터지는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고 다시 한 번 체감했지요. 이런 절망감을 털어내려면 대규모의 사정을 통해 권력자·기득권층의 부정부패부터 일소하고, 전관예우와 같은 것을 법적으로 금지해 소위 힘있는 자들의 특권과 특혜를 없애야 합니다.”

 

 

한국철학회 회장이자 대전대 철학과 송인창(宋寅昌) 교수는 “MB 정부가 말로는 공정을 외치지만 정작 특정한 계층만을 변호하고 기득권을 보호하는 정책만 펴며, 그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적과 아군이라는 흑백논리로 지나치게 배제하고 포용하지 못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동반자적 안목’을 주문했다.

 

 

“공정한 사회 구현은 편견이 없는 시각에서부터 비롯됩니다. 인사문제에서 흑백논리가 아닌 상생(相生)의 논리로 집권 후반기를 잘 마무리 했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서 상생은 같은 부류의 측근만을 감싸라는 뜻이 아니에요. 상생 속에는 상극(相剋)의 논리가 내재해 있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고, 상극까지도 껴안을 수 있는 동반자적인 안목이 필요합니다.”

 

 

◈ 소외층 배려 없는 공정은 거짓

MB 정부의 ‘공정사회 구현’에 냉담한 것은 역설적으로 공정에 대한 갈증과 갈망이 절실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한국사회가 지향해야 할 ‘공정’이란 무엇인가.

 

 

사실, 공정은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적 가치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의 문제다. 공정에 대한 기준과 실제적인 체감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송인창 교수는 “모든 사람에게 기회만 똑같이 주면 그만이라는 식의 ‘형식적인 기회균등’이 마치 공정성의 기준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림없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송 교수의 말이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능력이 있는 자와 능력 없는 자와 갈등이 해소되고 모두가 공생(共生)할 수 있는 기준으로, 사랑과 배려 그리고 도덕성에 바탕을 둔 정의가 뒷받침돼야 제대로 된 공정성입니다. 공정한 분배라는 것도 단순히 능력에 따른 분배가 아니라 도덕성을 바탕에 깔아야 해요.”

 

 

송 교수는 공정성의 의미 속에 반드시 ‘도덕성’이 있어야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사회가 가능해진다”고 했다. 계속된 그의 말이다.

 

 

“예를 들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달리기 시합을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단순히 장애인을 비장애인보다 조금 앞서 뛰게 하는 정도의 배려로 공정함을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달리기 결과, 장애인이 지면 우리가 명절날 재미 삼아 고스톱을 치고 돈 딴 사람이 잃은 사람에게 개평을 주듯, 장애인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주는 배려와 사랑을 베풀고서 공정성을 말해야 옳지요. 우리 사회는 아직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가치실현이 필요한 사회입니다.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의 마음이 없으면, ‘공정사회 구현’이란 말도 빈말에 불과할 것입니다.”

 

 

송 교수는 《맹자》의 ‘반구저기(反求諸己)’를 언급하며 권력자가 자기 자신부터 되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반구저기는 ‘잘못을 자신(自身)에게서 찾는다’라는 뜻으로, ‘행해 보아서 기대했던 것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면, 모두 돌이켜 자기 자신에게서 그 원인을 찾아보라’는 의미다.

 

 

“공정사회 구현한다면 법무부 장관 내정자로 자기 측근을 내정하는 것부터가 공정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을 돌이켜 보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게 공정사회 구현을 위한 시작이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출처 : 만남과 대화
글쓴이 : 대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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