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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하버드 특강 "정의" - 6부 임마누엘 칸트의 도덕론

다니엘22 2011. 9. 5. 04:11

6강. 임마누엘 칸트의 도덕론

(Mind Your Motive/The Supreme Principle of Morality)

 

 

<개요>

 

여섯 번째 시간에는 난해하기로 유명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사상을 살펴본다.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에서 칸트는 두 가지 의문에 대해 답을 제시한다. ‘최고의 도덕원칙은 무엇인가?’‘자유는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의문이다. 칸트는 자유와 도덕, 이성에 대해 까다롭고 엄격한 개념을 제시한다. 자유는 스스로에게 부과한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도덕은 목적 그 자체를 선택하는 것인데, 이는 인간이 이성적 존재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기 때문에 존엄하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수단이 아닌 목적이 돼야 한다고 칸트는 주장한다. 또한 칸트는 도덕이 동기에 달려 있으며, 선한 동기는 의무 동기라고 말한다.

 

칸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대조되는 개념들을 염두에 두는 게 좋다. 도덕을 결정하는 동기에는 의무 동기끌림 동기가 있다. 자유를 결정하는 의지 결정 방법에는 자율타율이 있고, 이성이 내리는 명령에는 정언명령가언명령이 있다. 정언명령은 다른 목적에 기대지 않는 명령이고, 가언명령은 ‘X를 위해 Y를 하라’는 명령이다. 칸트는 정언명령의 세 가지 공식도 제시한다. 첫째는 보편적 법칙의 공식이다. 어떤 행동이 정언명령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을 보편화했을 때 모순이 없어야 한다는 얘기다. 둘째는 목적으로서의 인간의 공식이다. 칸트는 인간이 그 자체에 절대적 가치를 지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성적 존재이기 때문에 존엄성을 갖는다는 설명이다.

 

엄격하고 까다로우면서도 현대인의 사고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임마누엘 칸트의 철학을 함께 공부해보자.

 

 

 

 

<강의 내용>

 

이 강좌에서는 읽는 철학자 중에서 가장 난해한 철학자를 만날 시간입니다. 오늘 우리는 임마누엘 칸트를 비웁니다. 칸트는 독특한 설명을 통해 우리에게 정언적 의무가 있다고 말합니다. 개개인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목적이 좋다고 해도 인간을 도구로 이용하지 말아야 할 정언적 의무죠. 16세의 칸트는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 뛰어난 학문적 역량을 선보였고 31세에 얻은 첫 직업은 기본급 없는 강사였습니다. 보수는 강좌를 듣는 학생 수에 따라서 정해졌죠. 하버드 대학도 고려해 봐야 할 합리적인 제도입니다.

 

다행히 인기 좋고 부지런한 강사여서 칸트는 근근이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죠. 칸트의 첫 번째 주요저서는 57세가 돼서야 나옵니다. 기다릴 가치가 있는 책이었죠. <순수이성비판>은 근대에 나온 철학서 중 가장 중요한 책일 것입니다. 그리고 몇 년 후 칸트는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를 썼죠. 이번 강좌에서 우리가 읽을 책입니다. 공부를 시작하기도 전이지만 칸트가 어렵다는 걸 말해두고 싶습니다. 하지만 칸트의 사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무엇보다 최고의 도덕원칙이 무엇인지를 말하기 때문이죠.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가 효과적으로 설명하는 건 또 있습니다.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가를 설명하죠. 그럼 시작해볼까요?

 

칸트는 공리주의를 거부합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인간 개개인, 즉 모든 인간은 존엄하기 때문에 존중을 받아야 합니다. 칸트에 따르면, 개인이 신성하고 개인에게 권리가 있다는 생각은 자기 소유 개념에서 나오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이성적인 존재라는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죠. 우리 모두는 이성적인 존재입니다. 이성적 사고를 할 줄 안다는 뜻이죠. 우리는 자율적인 존재이기도 합니다. 자유롭게 행동하고 선택할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죠. 인간이 가진 능력은 자유와 이성의 능력만이 아닙니다. 인간은 고통과 쾌락, 만족을 느끼는 능력도 갖고 있습니다. 칸트는 공리주의도 절반은 옳다고 인정하죠.

 

‘물론 우리는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하고 쾌락을 원한다.’ 칸트는 그 점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가 부정하는 건 고통과 쾌락이 우리의 통치권자라는 벤담의 주장입니다. 칸트는 그게 틀렸다고 생각하죠. 칸트는 우리의 이성적 능력이 인간을 남다르고 특별하게 만들어주며 동물과 구별된 고귀한 존재로 만들어준다고 생각합니다. 이성 덕분에 우리는 기호를 가진 육체적 존재 이상이 되죠. ‘자유’라고 하면 우리는 종종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나 원하는 걸 방해받지 않는 걸 떠올립니다. 자유를 정의하는 하나의 방식이긴 하지만 칸트는 자유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칸트가 생각하는 자유의 개념은 보다 엄격하고 까다롭죠. 엄격하고 까다롭지만 생각해 보면 상당한 설득력이 있기도 합니다. 칸트의 추론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동물처럼 쾌락을 좇을 때, 즉 욕망을 채우고 고통을 피하려 할 때 우리는 진짜 자유로운 것이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기호와 충동의 노예로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배고픔이나 이걸 먹고 싶다는 욕구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죠. 그래서 그걸 충족시키려는 행동은 자연적 필연성에 따른 행동일 뿐입니다. 칸트에게 자유는 필연성의 반대말입니다.

 

몇 년 전 이런 광고 문구가 있었습니다. 탄산음료 스프라이트의 광고 문구인데 ‘네 갈증에 복종하라’였죠. 그 광고 문구에는 칸트의 통찰력이 담겨 있습니다. 칸트의 주장이 담겨 있죠. 스프라이트나 펩시콜라를 사러 갈 때 여러분은 자유롭게 스프라이트나 펩시콜라를 고른다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실제로 여러분의 갈증이나 광고가 유발한 욕망에 복종하는 것뿐이죠. 자신이 선택하거나 만들어내지 않은 자극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 칸트의 자유 개념

 

자유로운 행동(자율) = 자율적인 행동 = 내가 부과한 법칙에 따르는 행동

타율 = 내가 선택하지 않은 욕망에 따른 행동

 

그럼 칸트의 까다로운 자유 개념이 중요한 이유를 생각해 보죠. 나는 의지를 어떤 방식으로 결정할 수 있을까요? 자연적인 자극이나 배고픔, 기호, 욕망으로 결정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칸트는 대답합니다. ‘자유로운 행동은 자율적인 행동이다. 자율적인 행동은 내가 나에게 부과한 법칙에 따르는 행동이다.’ 물리법칙이나 인과법칙에 따르는 행동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먹고 마시고 싶은 욕망, 식당에서 음식을 고를 때의 욕망은 자율이 아니라는 얘기죠.

 

그럼 자율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 칸트는 자율과 반대인 상태를 설명하는 단어를 만들어냅니다. ‘타율’이 바로 자율의 반대말이죠. 타율적인 행동은 기호에 따른 행동이나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욕망에 따른 행동입니다. 그러니까 칸트가 주장하는 엄격한 자유는 자율로서의 자유인 것입니다. 왜 자율은 타율 혹은 자연의 명령에 따른 행동의 반대말일까요? 칸트는 자연이 인과법칙의 지배를 받는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보죠. 당구공을 손에서 놓을 때를 생각해 봅시다. 당구공은 바닥에 떨어지죠. 하지만 우리는 당구공이 자유롭게 행동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죠? 당구공은 자연법칙, 다시 말해 인과법칙, 중력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자율로서의 자유라는 엄격하고 까다로운 자유의 개념처럼 칸트가 제시한 도덕 개념도 까다롭습니다.

 

자유로운 행동은 주어진 목적을 달성하려고 최선의 수단을 고르는 게 아닙니다. 목적 그 자체를 선택하는 것이죠. 그 선택은 인간은 할 수 있고 당구공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기호나 쾌락을 좇아 행동하는 한 우리는 외부에서 주어진 목적을 실현할 수단으로서 행동하게 됩니다. 우리는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의 주체가 아니라 도구인 것이죠. 이것이 타율적으로 의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반면 자신에게 부과한 법칙에 따라 자율적으로 행동할 때 우리는 목적 그 자체를 위해 어떤 일을 하게 됩니다. 자율적으로 행동할 때 우리는 외부에서 주어진 목적의 도구가 되지 않고 자기 자신을 목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칸트는 말하죠. 자유롭게 행동하는 능력이 인간의 삶에 특별한 존엄성을 부여한다고 말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한다는 말은 개인을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로 본다는 뜻이죠. 그렇기 때문에 타인의 행복을 위해 사람을 이용하는 일은 옳지 않습니다. 칸트가 공리주의의 오류를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고 개인의 존엄성과 권리를 존중하는 게 중요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존 스튜어트 밀의 말을 떠올려 봅시다. ‘장기적으로 볼 때 정의와 개인의 존엄성을 존중하면 인간의 행복이 극대화 된다.’ 칸트는 그 말에 뭐라고 답할까요? 그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결국 그런 결과가 나온다고 해도, 기독교도를 사자한테 던지면 결국에는 공포가 퍼져 나가서 전체의 공리가 감소한다는 이유로 개인의 권리와 존엄성을 존중한다면 공리주의자들의 목적은 옳지 않습니다. 그건 우연적이고 도구적인 이유이기 때문이죠. 장기적으로 최선의 결과를 낳는다고 해도 그건 사람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지 사람을 목적 그 자체로 존중하는 게 아니죠. 이것이 자율로서의 자유에 대한 칸트의 사상입니다.

 

이 사상이 칸트의 도덕 사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짐작이 되시죠? 하지만 한 가지 질문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무엇이 행동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할까요? 공리나 기호, 욕구의 만족이 아니라면 무엇이 어떤 행동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일까요? 이 질문은 칸트의 까다로운 자유 개념에서 까다로운 도덕 개념으로 우리를 안내하죠. 칸트는 뭐라고 말합니까? 어떤 행동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는 건 그 행동이 낳은 결과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어떤 행동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는 건 동기입니다. 어떤 의지, 어떤 의도로 그 행동을 했느냐의 관계가 있는 것이죠. 중요한 건 동기이고 그 동기는 특정한 성질을 가져야 합니다.

 

■ 칸트의 도덕 개념

 

어떤 행동의 도덕적 가치는 동기에 달려 있다(올바른 이유로 올바른 일을 하라.).

선한 의지가 선한 이유는 그것이 낳는 결과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선하다. 선한 의지로 최선을 다했다면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한 경우에도, 선한 의지는 그 자체로 완전한 가치를 지닌 보석처럼 빛이 난다. - 임마누엘 칸트 -

 

어떤 행동의 도덕적 가치는 그 행동의 동기에 달려 있고 중요한 건 올바른 이유로 올바른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선한 의지가 선한 이유는 그것이 낳는 결과 때문이 아니다’라고 칸트는 말하죠. ‘그것은 그 자체로 선하다. 선한 의지로 최선을 다했다면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한 경우에도, 선한 의지는 그 자체로 완전한 가치를 지닌 보석처럼 빛이 난다.’ 어떤 행동이 도덕적으로 선하려면 도덕법에 순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도덕법 자체에도 기여해야 하죠. 칸트는 동기가 행동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한다고 생각하며 행동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는 동기는 의무 동기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덕

의무 vs 끌림

 

의무감에서 하는 행동, 옳기 때문에 하는 행동의 반대는 무엇일까요? 칸트에게 그 반대는 우리의 끌림과 관계있는 모든 동기입니다. ‘끌림’이 의미하는 건 모든 욕망이죠. 상황에 따라 주어지는 모든 바람, 기호, 충동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도덕법 그 자체를 위해 오직 의무감 때문에 한 행동만이 진정한 도덕적 가치를 가집니다. 이제 여기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몇 가지 예를 생각해 보죠.

 

칸트는 먼저 가게 주인의 예를 듭니다. 그 예로 직관을 이끌어내 자기주장에 설득력을 부여하는데 어떤 행동이 도덕적 가치를 얻으려면 옳기 때문에 한 행동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칸트는 가게에 어수룩한 손님이 오는 경우를 가정해 보자고 합니다. 가게 주인은 손님에게 거스름돈을 덜 줘도 큰일이 없으리라는 것을 압니다. 적어도 그 손님은 모를 게 확실한 상황이죠. 하지만 가게 주인은 말합니다. ‘이 손님한테 거스름돈을 적게 주면 소문이 퍼져 내 평판이 떨어지고 장사에도 피해가 가게 된다. 그러니까 이 손님한테도 거스름돈을 제대로 줘야지.’ 가게 주인은 나쁜 짓을 하지 않습니다. 거스름돈을 정확하게 주니까요. 하지만 그 행동이 도덕적으로 가치가 있을까요? 칸트는 없다고 말합니다.

 

‘도덕적 가치가 없다. 자신의 이익이라는 잘못된 이유로 옳은 일을 했기 때문이다.’ 이건 상당히 간단한 경우입니다. 그 다음에 칸트는 자살을 예로 듭니다. 칸트는 말하죠. ‘우리는 스스로를 보존할 의무가 있다.’ 삶을 사랑하는 사람 대부분은 자살을 하지 않은 이유가 여러 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진짜 이유를 구분할 수 있는 경우는 하나뿐이죠. 자살을 하지 않는 진짜 이유를 알 수 있는 경우는 비참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도 그러니까 누가봐도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데도 불구하고 목숨을 보전할 의무를 지적하고 자살을 하지 않는 사람의 경우뿐입니다. 이 예는 동기의 중요성을 부각시키죠. 도덕적인 동기는 옳은 일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뿐입니다.

 

* Honesty is the best policy. It's also the most profitable. (정직이 최선의 수단이다. 최대의 이익을 창출하기도 한다.)

 

이제 다른 경우를 두어 가지 들어보죠. 거래개선협회의 모토가 무엇입니까? ‘정직이 최선의 수단이다. 최대의 이익을 창출하기도 한다’죠. 거래개선협회가 <뉴욕타임스>에 전면광고입니다. ‘정직은 어떤 자산보다 중요합니다. 진실과 개방성, 공정한 가치를 기초로 한 기업은 성공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거래개선협회에 가입해 이익을 창출하세요.’ 거래개선협회 회원들의 정직한 거래에 대해 칸트는 도덕적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까요? 이건 아주 좋은 예입니다. 만약 이익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기업들이 고객들과 정직한 거래를 한다면 그들의 행동엔 도덕적 가치가 없습니다. 그게 칸트의 생각이죠.

 

2년 전 메릴랜드 대학은 부정행위 때문에 골치를 앓았습니다. 그래서 무감독 시험제도를 시작하며 부근 상인들과 함께 새 프로그램을 실시했죠. 부정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서약하면 부근 상점들에서 10~25% 할인을 받게 해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할인을 받으려는 동기로 명예규범을 지키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칸트의 가게 주인하고 같은 경우죠. 중요한 건 의지의 성격이고 동기의 성격입니다. 도덕과 관계있는 건 의무 동기뿐입니다. 끌림 동기는 관계가 없죠.

 

의무 동기로 행동할 때, 즉 끌림 동기나 자기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걸 삼가고 동정심이나 이타주의란 동기도 피해야 비로소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이고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내 의지가 외부적 요인에 의해 결정, 지배되지 않는 것이죠. 칸트의 자유사상과 도덕사상은 이렇게 연결돼 있습니다. 이제 모든 사항이 명확한지, 아니면 질문이나 의문점이 있는지를 확인해 보죠. 모호한 점에 대한 질문이나 칸트의 생각에 대한 반박도 좋습니다. 의무 동기만이 행동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한다는 주장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죠?

 

● 토론

 

- 말씀하세요.

- 두 가지 모호한 점에 대해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칸트의 주장에는 뭐랄까 의도를 벗어나는 면이 있어 보입니다. 도덕이 뭔지 인식하면 도덕성을 얻기 위해 동기를 바꿀 수 있으니까요.

- 그리고 둘째로...

- 학생이 생각하는 예를 하나 들어주시죠.

- 가게 주인이 옳은 일을 하기 위해서 거스름돈을 제대로 주기로 결심을 했다면, 즉 도덕성을 얻는 걸 동기로 정했다면 그건 원래 의도를 벗어나는 게 아닐까요? 그러니까 동기 때문에 도덕성이 결정되면 행동의 순수성이 훼손되지 않을까요?

- 도덕적 행동 자체가 동기는 아니니까요.

-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가게 주인이 아니라 이런 가게 주인을 생각했군요. 거스름돈을 적게 줄까 생각을 하다가 ‘소문이 퍼지면 내 평판이 떨어질 거야’라고 생각한 게 아니라 이렇게 생각하는 가게 주인이죠. ‘나는 정직한 사람이 되고 싶어. 거스름돈을 제대로 주는 사람이 돼야지 그게 올바른 일이니까.’

- ‘도덕적인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라고요.

- ‘도덕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

- ‘선한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 도덕이 요구하는 대로 행동해야지’ 미묘한 문제군요. 그리고 좋은 질문입니다. 학생은 칸트의 사상에서 중요한 문제를 지적했어요. 칸트는 도덕법에 따르는 사람에게는 혜택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기적인 혜택은 아니죠. 그럼 원칙이 무너지니까요. 칸트는 끌림 동기가 주는 다른 종류의 혜택을 이야기합니다. 도덕법에 대한 경외감을 이야기하죠. 그러니까 가게 주인이 ‘도덕법에 대한 경외감을 키우고 싶어. 그러니까 올바른 행동을 해야지’라고 말했다면 저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칸트의 생각에 따르면 도덕성을 얻은 거죠. 자신의 동기나 의지가 스스로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도덕법에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가치가 있는 일이에요.

 

- 두 번째 질문은 간단하게 드리죠. 그럼 도덕이 100% 객관적인 게 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요?

- 어째서 도덕이 100%...

- 말을 잘못했네요. 주관적이지 않은 거죠? 도덕이 전적으로 자신의 도덕관념에 따라 결정되는 거라면 어째서 그걸 남들한테...

- 어빈에도 좋은 질문이네요. 이름이 뭐죠?

- 아마디입니다.

- 아마디요? 도덕적 행동이 도덕법에 따르는 행동이고 의무감에서 나온 행동이라면, 그리고 자율에 따라 자유롭게 행한 것이라면 스스로에게 부과한 법칙에 따르는 행동이어야 합니다. 그게 자율이니까요. 그 점은 아마디의 말이 맞습니다. 그렇다면 흥미로운 질문 하나가 떠오르죠. 자율적인 행동이 내가 스스로에게 부과한 법칙에 따르는 행동이라면, 즉 그렇게 해서 인과법칙과 자연법칙의 사슬을 벗어나게 된다면 내가 스스로에게 부과한 법칙이, 즉 내가 의무감에서 행동할 때의 법칙이 아마디나 여러분 각자가 스스로에게 부과한 법칙과 같다는 걸 어떻게 보장받을까요? 이런 질문을 해보죠. 칸트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안에는 도덕법이 몇 가지나 있을까요? 1000개일까요, 하나일까요? 칸트는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원래 질문으로 돌아가 보죠. 도덕법은 무엇이고 우리에게 무엇을 말할까요? 자율적인 행동은 양심 혹은 스스로에게 부과한 법칙에 따른 행동입니다. 각자가 이성을 발휘하는데 어째서 모두가 동일한 도덕법에 이르게 될까요? 그것이 아마디의 질문입니다. 칸트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자율적인 존재인 우리가 스스로에게 도덕법을 부과하게 한 것은 이성인데 그 이성은 일종의 실천이성이고 이는 인간 모두가 공유하는 것입니다.

 

개인마다 다른 게 아니죠. 개인의 존엄성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는 모두에게 이성이란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존재하는 그 능력을 사용하는 일이 우리 모두를 존엄한 존재로 만들어주죠. 이성을 발휘하는 능력은 모두 같기 때문에, 성장환경, 생활환경에 따라 다르지 않고 보편적이며 동일한 능력이기 때문에 도덕법을 낳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율적인 행동은 우리가 이성을 써서 스스로에게 부과한 규칙에 따르는 행동입니다. 하지만 이성적인 존재로서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이성은 양육과정이나 가치, 흥미에 따라서 달라지는 개별적 이성이 아닙니다. 칸트가 말하는 ‘순수실천이성’은 각각의 경험적 목적에 좌우되지 않는 선험적 능력을 의미합니다.

 

그럼 이성은 어떤 도덕법을 낳을까요? 그 내용은 어떤 것일까요? 이 질문에 답하려면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를 읽어야 합니다. 그 질문은 다음 시간에 계속 고민해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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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칸트 얘기로 돌아가 봅니다. 우선 이 점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이번 주말까지 여러분 모두는 칸트의 기본적인 사상을 이해할 겁니다. 우스운가요? 하지만 그렇게 될 겁니다. 칸트의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는 두 가지 질문에 대한 책입니다. 첫 번째는 ‘최고의 도덕원칙은 무엇인가?’이고 두 번째는 ‘자유는 어떻게 가능한가?’죠. 두 가지 중요한 질문입니다. 한 가지 방법을 알려 드리죠. 이 난해한 철학서를 읽을 때는 이 점을 기억하세요. 쟁점들과 연관된 일련의 대조 혹은 이원론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오늘 저는 그걸 얘기하고 싶습니다.

 

■ 임마누엘 칸트

- 최고의 도덕원칙은 무엇인가?

 

오늘 우리는 칸트가 말하는 최고의 도덕원칙이 무엇인기 알아볼 것입니다. 칸트가 최고의 도덕원칙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살펴볼 때는 칸트가 제시한 세 가지 대조 혹은 이원론을 떠올리는 게 좋습니다. 첫 번째는 여러분도 기억하다시피 행동의 동기와 연관된 것입니다. 칸트에 따르면 도덕성을 부여하는 동기는 한 종류뿐입니다. 의무 동기죠. 올바른 이유로 올바른 행동을 하는 겁니다. 다른 동기엔 어떤 것들이 있었죠? 칸트는 그것들을 모두 끌림 동기라고 부릅니다.

 

■ 칸트의 세 가지 대조 개념

 

도덕

동기 : 의무 vs 끌림

자유

의지 결정 방법 : 자율 vs 타율

이성

명령 : 정언명령 vs 가언명령

 

우리가 하는 행동의 동기가 욕망이나 기호를 만족시키는 것일 때, 즉 이익을 좇는 것일 때 우리는 끌림 동기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설명을 잠깐 중단하고 칸트가 말하는 의무 동기, 선의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는지 알아봅시다.

 

- 의무 동기와 끌림 동기에 대한 설명에 모두 만족하십니까? 어떻습니까? 네, 말씀하세요.

- 의무와 끌림을 그렇게 구분하면 도덕적 행동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이기적인 동기는 어떤 경우에나 찾을 수 있지 않나요?

- 사람들이 이기적인 동기로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기는 합니다. 칸트도 그걸 부인하지는 않죠. 칸트의 말을 이것입니다. 우리가 도덕적으로 행동할 때, 즉 행동에 도덕적 가치가 있을 때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는 건 바로 이기심, 분별력, 끌림을 벗어나 의무감에서 행동하는 능력이라는 것이죠. 몇 년 전, 저는 철자 맞히기 대회에 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대회 우승자로 발표된 소년이 있었죠. 앤드루라는 13세 소년이었습니다. 우승을 결정지은 단어, 소년이 맞혀야 했던 단어는 ‘echolalia’ 였죠. 무슨 뜻인지 아는 분 있습니까?

- 꽃 이름인가요?

- 네?

- 꽃 이름 아닌가요?

- 꽃 이름은 아닙니다. ‘echolalia’는 님프인 에코처럼 들은 말을 자꾸 되풀이하는 성향을 의미하죠. 앤드루는 철자를 잘못 말했는데 심판들은 잘못 알아들어서 맞힌 줄 알았고 앤드루를 전미 철자 맞히기 대회의 우승자로 인정했습니다. 앤드루는 심판들한테 가서 철자를 잘못 말했다고 시인했습니다. 1등의 자격이 없다고 말했죠. 사람들은 소년을 도덕적 영웅이라고 추켜세웠고 <뉴욕타임스>엔 ‘철자 맞히기 대회의 영웅은 철자를 틀린 소년’이란 기사가 실렸습니다. 앤드루와 뿌듯해하는 어머니의 사진입니다. 그 후 인터뷰에서 소년이 한 얘기를 한 번 들어보시죠. “심판들이 저를 보고 아주 정직하다고 했어요.” 그리고 자신의 동기를 이렇게 덧붙입니다. “전 치사한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았어요.” 칸트는 소년에 대해 뭐라고 말할까요? 말씀하세요.

 

- 그게 부수적인 이유인지, 주된 이유인지에 따라 다를 것 같아요. 그러니까 자신이 말한 철자가 틀렸다고 인정한 이유 말입니다.

- 좋습니다. 이름이 뭐죠?

- 보스코입니다.

- 재미있는 생각이군요. 여기에 대해 의견 있는 분 또 없습니까? 칸트의 원칙이 지나치게 엄격하고 까다롭다는 걸 보여주는 예는 아닐까요? 칸트는 여기에 대해 뭐라고 말할까요? 말씀하세요.

- 제 생각에 칸트가 의미한 건 ‘의무감에서 나온 순수한 동기가 행동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한다’일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 경우, 소년에게는 하나 이상의 동기가 있었을 것 같아요. 치사한 인간이 되기 싫다는 동기와 함께 옳은 일을 하겠다는 의무감도 든 것이죠. 하나 이상의 동기가 존재한다고 해서, 즉 의무 동기 외의 동기가 있다고 해서 도덕적 가치가 없는 행동은 아닙니다. 의무감과 관계되는 동기가 도덕적 가치를 부여해주니까요.

- 좋습니다. 이름이 뭐죠?

- 주디스입니다.

- 제가 보기에는 주디스의 설명이 칸트의 사상에 부합하는 것 같습니다. 올바른 일을 지지하는 감정이나 기분이 드는 건 괜찮습니다. 만약 그것이 행동의 이유가 아니라면 말이죠. 주디스가 의무 동기에 대한 칸트의 관점을 상당히 잘 변호한 것 같네요. 고맙습니다.

 

이제 세 가지 대조로 돌아가 봅시다. 이제 칸트의 주장 하나는 분명해졌습니다. 도덕적 가치를 갖는 행동은 끌림이 아니라 의무 동기에서 한 행동이라는 주장이죠. 하지만 지난 시간에 본 것처럼 칸트의 엄격한 도덕 개념은 유달리 까다로운 자유 개념과 연결돼 있습니다. 도덕과 자유의 연결 관계는 우리를 두 번째 대조로 안내하죠. 두 번째 대조는 나의 의지가 결정되는 방식에 대한 것입니다. 자율과 타율이란 방식이죠. 칸트에 따르면 내가 자유로운 때는 내 의지를 자율적으로 결정할 때, 스스로에게 법칙을 부여할 때뿐입니다. 자율로서의 자유를 가지면 우리의 행동은 외부에서 부과된 법칙이 아니라 스스로 부과한 법칙을 따르게 됩니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법칙은 어디에서 올까요? 이성입니다. 이성이 내 의지를 결정하면 의지는 자연, 끌림, 상황과 관계없는 선택을 가능케 하는 힘이 되죠. 이렇게 칸트의 까다로운 도덕 개념과 자유 개념은 유달리 까다로운 이성 개념과 연결됩니다. 이성은 어떻게 의지를 결정할까요?

 

그 두 방식이 바로 세 번째 대조입니다. 칸트는 이성의 명령이 두 종류라고 말하죠. 칸트는 이성이 명령을 내린다고 말합니다. 복종해야 하는 명령이죠. 첫 번째 명령은 아주 친숙한 형태인 ‘가언명령’입니다. 가언명령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성을 사용합니다. ‘X를 원하면 Y를 하라’죠. 가언명령은 목적에 따른 추론입니다. ‘사업가로 좋은 평판을 얻고 싶다면 거스름돈을 제대로 줘라. 소문이 날지도 모른다.’가 가언명령입니다.

 

어떤 행동이 다른 것의 수단으로만 옳다면 그것은 가언명령이다. 어떤 행동이 그 자체로 옳고, 그래서 이성에 부합하는 의지에 필요한 것이라면 그것은 정언명령이다. - 임마누엘 칸트

 

‘어떤 행동이 다른 것의 수단으로만 옳다면 그것은 가언명령이다’라고 칸트는 말하죠. ‘어떤 행동이 그 자체로 옳고 그래서 이성에 부합하는 의지에 필요한 것이라면 그것은 정언명령이다.’ 이것이 정언명령과 가언명령의 차이입니다. 정언명령은 정언적으로 명령합니다. 다른 목적과 관계없이, 다른 목적에 기대지 않고 명령하죠. 여러분도 세 가지 대조 항목들 사이의 관계가 보이실 겁니다.

 

자율로서의 자유를 행사하려면 가언명령이 아니라 정언명령에 따라 행동을 해야 합니다. 칸트의 논의를 전개하는 데 사용한 세 가지 대조를 보면 정언명령이 어떻게 도출됐는지 알 수 있죠. 여기서 아주 중요한 질문이 떠오릅니다. 정언명령은 무엇일까요? 최고의 도덕원칙은 무엇일까요? 그 원칙은 우리에게 무엇을 명령할까요? 칸트는 정언명령의 세 가지 공식을 제시합니다. 먼저 두 가지 공식을 알려드린 후 여러분의 의견을 들어봅시다.

 

■ 정언명령

 

보편적 법칙의 공식

“반드시 준칙에 따라 행동하라. 네 의지로 인해 그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되도록 행동하라.”

목적으로서의 인간의 공식

 

첫 번째는 ‘보편적 법칙의 공식’입니다. ‘반드시 준칙에 따라 행동하라 네 의지로 인해 그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되도록 행동하라.’ 칸트가 말한 ‘준칙’은 무엇일까요? 여러분이 하는 행동의 이유를 설명하는 규칙, 원칙입니다. 약속 지키기를 예를 들어보죠. 저한테 100달러가 꼭 필요하다고 가정해 봅시다. 금방 갚을 수 없다는 걸 스스로 아는 상태이지만 저는 누군가한테 가서 지키지 못할 거짓 약속을 합니다. ‘오늘 나한테 100달러만 줘 빌려주면 다음 주에 갚을 게’ 그 거짓 약속은 정언명령에 해당할까요? 칸트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걸 알아보는 시험법도 있죠. 거짓 약속이 정언명령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려면 보편화를 시켜보면 됩니다. 여러분이 따를 행동의 준칙을 보편화 해 보십시오. 돈이 필요할 때 모두가 거짓 약속을 한다면 아무도 약속을 믿지 않게 됩니다. 약속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거죠. 모순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준칙을 보편화했더니 스스로를 무너뜨렸죠. 이런 시험을 통해 우리는 거짓 약속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은 보편적 법칙의 공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설득력이 있나요? 어떻습니까?

 

- 네, 말씀하세요.

- 정언주의와 가언의 차이에 대해 질문이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 정언명령과 가언명령의 차이 말이죠?

- 그렇습니다. 누군가가 정언명령에 따라 행동해 행동 준칙을 무너뜨리지 않는다고 해도 X를 하는 건 Y를 원하기 때문일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궁핍해도 거짓말을 하지 않을 거야. 난 약속을 지키는 세상을 원하니까’

- ‘약속 지키는 관행을 망치기 싫으니까’

- 그렇게 말하는 거죠. 그건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을 정당화하는 것 같습니다.

- 결과론적 도덕추론의 예처럼 들린다는 얘기군요.

- 이름이 뭐죠?

- 팀입니다.

 

- 존 스튜어트 밀도 팀하고 생각이 같습니다. 칸트에 대해 그런 비판을 했죠. ‘준칙을 보편화해, 그 경우 약속 지키기의 관행이 깨질 거라는 점을 알게 된다면 결과에 대해 호소하는 것과 같다.’ ‘거짓 약속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그것이라면 결과에 호소하는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도 그렇게 칸트를 비판했는데 그건 잘못된 비판이었습니다. 어쨌든 팀하고 존 스튜어트 밀은 좋은 동지가 되겠네요. 칸트가 결과에 호소한다고 보는 사람은 팀 말고도 종종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거짓말을 하면 세상은 더 나빠질 거야.’ ‘아무도 남의 말을 믿지 않을 테니 말야. 그러니까 거짓말을 하면 안 돼.’

 

칸트는 그렇게 말한 게 아닙니다. 그렇게 받아들이기가 쉽기는 하죠. 칸트는 ‘이건 준칙이 정언명령에 부합하는지 알아보는 시험이야’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것 자체가 이유는 아니죠. 행동 준칙을 시험하기 위해 그걸 보편화해야하는 이유는 내가 자신의 욕구, 욕망을 타인의 욕망보다 앞세우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입니다. 정언명령의 이런 요구, 이런 특징을 지적하는 것은 내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자신의 이익, 욕구, 특정한 상황이 타인의 이익, 욕구, 상황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걸 보여줍니다. 그것이 이 보편화 시험에 깔려 있는 도덕적 직관일 것입니다.

 

이제 두 번째 공식을 알려 드리죠. 칸트가 말하는 정언명령의 두 번째 공식은 보편적 법칙의 공식보다 직관적으로 이해하기가 쉬울 겁니다.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라’는 공식이죠. 칸트는 정언명령의 두 번째 공식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정언명령은 특정한 이익, 목적에 기초를 둘 수 없다. 그러면 그 이익과 목적을 추구하는 사람만 관련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존재 자체가 절대적 가치와 목적을 가지는 어떤 것이 있다고 상상해 보라. 그렇다면 그 자체에, 그리고 그 내부에만 정언명령의 토대가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 임마누엘 칸트 -

 

“인간, 그리고 일반적으로 모든 이성적 존재는 자신의 목적으로서 존재하며 이런 저런 의지에 의해 임의로 사용되는 존재가 아니다.” - 임마누엘 칸트 -

 

‘그러나 존재 자체가 절대적 가치와 목적을 가지는 어떤 것이 있다고 상상해 보라. 그렇다면 그 자체에, 그리고 그 내부에만 정언명령의 토대가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안에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칸트는 말하죠. ‘인간, 그리고 일반적으로 모든 이성적 존재는 자신의 목적으로서 존재하며 이런 저런 의지에 의해 임의로 사용되는 존재가 아니다.’ 여기서 칸트가 구분하는 건 인간과 물건의 차이입니다. 이성적 존재가 바로 인간입니다. 인간의 가치는 상대적이지 않습니다. 인간이 가치를 가진다면 그건 절대적이고 본질적인 가치죠. 즉 이성적 존재는 존엄성을 가집니다. 존경과 존중을 받을 가치가 있죠.

 

“나 자신이든 다른 사람이든 인간을 단순한 수단으로 다루지 마라. 인간을 언제나 목적으로 다루도록 행동하라.” - 임마누엘 칸트 -

 

이런 추론을 거쳐 칸트는 정언명령의 두 번째 공식을 도출합니다. 이것이죠. ‘나 자신이든 다른 사람이든 인간을 단순한 수단으로 다루지 마라. 인간을 언제나 목적으로 다루도록 행동하라.’ 이것이 목적으로서의 인간의 공식입니다.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그 자체가 목적이라는 생각이죠. 단순한 수단으로 이용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거짓 약속을 할 때 너는 100달러를 얻겠다는 내 목적과 욕망을 위해 상대방을 이용합니다.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거죠. 상대의 존엄성을 존중하지 않는 겁니다. 상대를 이용하는 겁니다. 이제 자살을 하지 말아야 할 의무를 생각해 봅시다.

 

살인과 자살은 모두 정언명령에 위배됩니다. 이유가 뭘까요? 살인은 어떤 목적을 위해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것입니다. 내가 살인청부업자든 분노나 열정으로 고통에 시달리든 특정한 이익이나 목적을 갖고 있든 그걸 위해 목숨을 이용하는 것이죠. 살인은 정언명령에 위배됩니다. 칸트는 도덕적으로 볼 때 자살과 살인이 다르지 않다고 말합니다. 자살과 살인이 같은 이유는 우리가 생명을 빼앗을 때, 타인이나 자신의 생명을 빼앗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이용하기 때문이죠. 이성적 존재인 인간을 수단으로 이용하기 때문에 인간을 목적으로 존중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이성적 능력, 존중을 요구하는 그 인간적 특징은 존엄성의 토대이고 그 이성적 능력과 인간적 특징은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존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살은 스스로의 존엄성을 침해하고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살인과 도덕적으로 볼 때 같습니다. 그 이유는 도덕법의 보편적 성격과 토대하고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타인의 존엄성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는 개개인의 특징과 관계가 없습니다. 칸트가 말하는 존중은 이 점에서 사랑과 다르죠. 존중은 동정심, 연대감, 동료의식, 이타적 감정과도 다릅니다. 사랑과 다른 미덕, 혹은 타인을 좋아하는 이유는 특정 개인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칸트는 보편적인 인간성에 대한 존중을 말합니다. 이성적 능력이 보편적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자신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것도 타인을 침해할 때와 마찬가지로 잘못된 일인 것입니다. 질문이나 반박 있습니까?

 

- 말씀하세요.

- 제가 조금 걱정이 되는 건 사람을 수단으로 이용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그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날마다 눈앞에 닥치는 것들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저는 저를 수단으로 이용해야 합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일정한 목표를 위해 이용해야 하죠. 좋은 성적을 받으려고 제가 리포트를 쓰는 경우를 생각해 보죠. 전 리포트 작성에 스스로를 이용해야 해요. 음식 같은 걸 사는 경우도 보죠. 가게에 가서 계산대 뒤에 있는 사람을 이용해야 음식을 살 수가 있습니다.

- 그렇습니다. 이름이 뭐죠?

- 패트릭입니다.

- 패트릭, 그건 나쁜 행동이 아니에요. 다른 사람을 수단으로 이용해도 정언명령을 어기는 게 아닙니다. 그건 잘못이 아니죠. 우리의 일이나 목적,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다룰 때 그 사람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타인을 다룬다면 말입니다. 그들을 존중한다는 말의 의미는 정언명령에 비추어보면 되죠. 납득이 되십니까?

 


도덕 형이상학을 위한 기초 놓기(책세상문고고전의세계 22)

저자
임마누엘 칸트 지음
출판사
책세상 | 2002-11-1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오늘날 우리는 인간복제,안락사,사형제도,동성애,테러리즘 등 수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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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가 제시한 설명이 최고의 도덕원칙을 명쾌하고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것 같습니까?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를 다시 읽고 다음 시간에는 그 의문에 대답해 봅시다.

 

 

* 저작권은 PBS / Harvard University에 있고, 번역은 EBS 방송에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상업적인 용도는 사용을 금합니다.

출처 : 책을 벗 삼아
글쓴이 : 문화재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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